今、実在の宮廷を揺るがした究極の愛憎劇が幕を開ける――
宮廷芸人を目指し、暴君に認められた2人が、王宮に渦巻く欲望と策略に巻き込まれていく!

◆史実とフィクションを見事に融合させた、
  最高にドラマティックな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

 2006年、韓国で4人に1人が観たという、とんでもない超大ヒット作が出現した。この国の過去のヒット作と言えば、南北の対立をテーマに巨額の製作費 を投じた大作がほとんどである。そんな今までのヒットの方程式をいとも簡単に覆す作品が誕生したというニュースに、国内のみならず世界中が耳をそばだてた のだ。

 


왕의 남자

대가집 마당-낮

신명나는 풍물소리.
광대패의 오방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인다.

마당에 마을 상민들이 반원 형태로 둘러서 있고,
술상이 차려진 대청마루엔 집주인으로 보이는 늙은 양반이 앉아 있다.

광대들의 살판(땅재주)과 버나(접시돌리기)가 어우러져 펼쳐지고 있다.
구경꾼들, 신기한 재주에 모두 신이 나는 표정이다.

신명나는 장단이 정리되며 광대들이 사라지자,
어느새 마당 한 편에 설치된 외줄 위에 광대 하나가 올라 서 있다.
치마저고리 차림에 각시탈을 쓴 공길이다.
누군가의 등장을 알리는 장단이 시작된다.
말뚝이탈을 쓴 광대 하나가 도포를 입고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등장한다. 장생이다.
외줄 위를 보던 구경꾼들 말뚝이의 동작에 웃는다.
장생 줄밑까지 걸어 와 멈춘다.
줄 위를 한번 올려다보고 줄을 오르기 시작한다.
광대패들의 장단 잦아든다.

공길
(올라오는 장생을 보고 줄을 건너 쪼르르 도망가며)
저 겁 대가리 없는 놈 좀 보소.
예가 어디라고 여길 올라 오냐?
냉큼 내려가라, 이놈아.

장생
(경사진 줄을 다 올라서)
저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대가집 맏아들이다. 이년아.

공길
상판을 보니 상놈 중에서도 상놈인데 어디서 도포를
주워 입고 양반이라 하느냐, 이놈아.

장생
자 어르신네 행차하시니, 잘 봐라~

첫발을 떼던 장생, 괜히 발을 헛딛고 겁먹은 표정을 짓다가 한 손을 뒷짐 지고 외줄을 건넌다.
공길, 장생이 줄을 타고 건너오자 경사진 줄을 타고 도망치듯 쪼르르 땅으로 내려간다.

공길
(줄밑에서 장생의 걸음을 과장되게 따라 걸으며)
느릿~ 느릿~
오뉴월 쇠불알 늘어지듯 걸으니 성질 급한 사람은
못 보겠네.

장생, 맞은편에 다다라 과장되게 가슴을 쓸어 내린다.

장생  
휴~ 저기서 보기엔 얼마 안 되는 거 같아 마음 푹
놓고 왔다 죽을 똥 쌀 뻔했네.
내 이번엔 네년이 남의 집 서방하고 붙어먹다 들켜
허겁지겁 도망가는 걸음을 뵈줄테니 한번 볼테냐?

하고는 아낙네들 치맛자락을 잡듯 도포자락을 잡고 잰걸음으로 쪼르르 달려 맞은편 끝에 가 선다.

공길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 똑 떨어져 뒤질 줄 알았더니
제법이구나.

장생
내 이제 신나게 한판 놀아 볼 것인데,
이 모습을 보면 처녀 할미 할 것 없이 정신이 팔려
사내가 아랫도리를 훔쳐도 모르니 네년도
아랫도리 단속 단단히 하고 보거라.

공길 얼른 아래춤을 손으로 가린다.
구경꾼들 웃는다.
장생 성큼성큼 줄 위를 걸어 가운데로 와 허궁제비(줄을 튕겨 다리사이로 앉았다 오르기)를 한다.

공길
아이고 이놈아,
니 다리사이 두 동네가 한 동네 되것다. 

장생
(멈추더니)
아이고, 이년아. 두 동네고 한 동네고 간에
똥꼬가 저릿저릿한 것이 오줌이 마려워 못 놀것다.
내 오줌이나 한번 싸고 계속 놀련다.
(바지춤을 풀고 내릴 시늉한다)

공길
에끼 이놈. 예가 어디라고.
점잖으신 어르신네들 앞이니. (사이)
얼른 꺼내 나랑 한번 맞춰보자, 이놈아.

공길과 장생의 넉살에 구경꾼들이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대청 위의 집주인 양반, 공길에게서 음흉한 눈길을 떼지 못한다.

<jump>

장생, 장단에 맞춰 화려한 외줄타기를 선보인다.
공길, 줄 위에서 노는 장생의 밑에서 신명나게 춤을 춘다.

주인집 양반, 줄타기는 아랑곳없이 공길만 바라보다 곁에 선 집사에게 뭐라 지시한다.
집사, 손짓해 꼭두쇠를 부르자 꼭두쇠가 냉큼 달려간다.
양반, 공길을 바라보며 꼭두쇠에게 귀엣말을 한다.
꼭두쇠, 연신 굽실거리며 양반의 귀엣말을 듣고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인다.
줄 위에서 겅중 겅중 뒷걸음질치던 장생, 꼭두쇠와 양반의 모습을 본다.
신명이 가시는 지 걸음을 뚝 멈추고 땅에 주저앉듯 줄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털썩 앉는다.
앉아 꼼짝 않는다.
의아하게 바라보던 구경꾼들 동요한다.
장생, 앉은 자세 그대로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땅으로 낙상한다.
공길, 장생에게 달려들어 몸을 살핀다.
광대들, 얼른 꼭두쇠와 양반의 반응을 살핀다.
꼭두쇠, 화난 표정으로 장생을 노려본다.
장생,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툭 털고 일어나 탈을 확 벗어 들고 양반을 노려보다 사라진다.
양반 “에헴~”하고 뒤틀린 심사를 내보이며 일어나더니 사라진다.
꼭두쇠, 방으로 들어가는 양반을 쳐다보다 걸어가는 장생을 노려본다.
공길, 각시탈을 머리 위로 올리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장생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대가집 행랑채-밤

한쪽 벽에 각시탈과 말뚝이탈이 나란히 걸려있다.
그 밑에 공길과 장생, 나란히 앉아 있다.

문이 열린다.
꼭두쇠 들어선다.
신경질적으로 감자가 든 소쿠리를 방 안에 내려놓는다.

광대1
(소쿠리를 보다가)
한 상 차려주기로 했잖아요.
이걸 누구 코에 붙여.

꼭두쇠
(장생을 노려보며)
안 쫓겨나길 다행인 줄 알고 먹어.

광대들, 일제히 원망하는 눈으로 장생을 쳐다보다 감자를 하나씩 집어 든다.
공길 소쿠리로 다가와 감자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가 장생에게 하나를 건넨다.
장생이 감자를 받아 드는 순간 누군가의 발이 감자를 발로 차버린다.
장생이 올려다보면 꼭두쇠가 화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공길 긴장한다.
꼭두쇠, 공길에게 ‘어서 가보라’하는 고갯짓을 한다.
공길, 잠시 머뭇하다 체념하듯 일어서려는데,
옆에 앉은 장생이 공길의 무릎을 눌러 주저앉힌다.

장생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가지마.

꼭두쇠, 말없이 장생을 노려본다.
공길 당황하며 꼭두쇠의 눈치를 살피고, 감자를 먹던 광대들 긴장한다.

장생
(공길이 손에 든 감자를 가로채 내던지며)
밥만 나오면 뭐든지 다 팔아?

꼭두쇠, 장생의 뺨을 철썩 갈긴다.

꼭두쇠
(공길에게)
뭐해? 빨리 안가?!

공길 일어나서 가려하는데,

장생
(꼭두쇠를 똑바로 쳐다보며 공길 들으라고)
그게 사는 거냐?

꼭두쇠
이 자식이 배시때기가 불렀구만.

장생, 쩔쩔매며 말리는 광대1을 아랑곳 않고 꼭두쇠를 노려본다.
꼭두쇠, 노려보는 장생을 발로 걷어차더니 쓰러지는 장생을 발로 밟는다.

공길
(다급하게)
하지 마요!

꼭두쇠, 공길의 말에 다소 진정되는 듯 멈추고, 공길이 나가려 하는데,
장생이 몸을 세우며 공길의 발을 붙든다.

꼭두쇠
안 놔?

장생, 놓지 않는다.
꼭두쇠, 장생을 패기 시작한다.
공길,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하다 장생의 손에서 발을 빼보려 하지만 안 빠진다.
광대1,2,3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꼭두쇠
니가 뭐야?
공길이가 간다는데 니가 뭐라고 지랄이야!

광대1,2,3 공길의 다리를 잡은 장생의 손을 떼려 한다.
장생 더 힘껏 공길의 다리를 부여잡고 공길을 바라본다.

장생
이 빙신아, 말해! 싫다고 말해.
니 재주를 욕보이는 짓이야.

공길, 장생을 바라보다 눈길을 피한다.

꼭두쇠
재주?
니깐 놈들 그 잘난 재주로 입에 풀칠이나 할 줄 알어?!

장생, 맞다가 공길의 발을 놓고 벌떡 일어난다.

장생
(말을 끊으며)
에이, 씨!
공길이 팔아, 먹고 사는 짓 그만해!

꼭두쇠, 장생의 기세에 잠시 당황하다 이성을 잃고 패기 시작한다.

꼭두쇠
(손으로 발로 닥치는 대로 패며)
이 새끼가?!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어디서 깽판이야, 깽판이.

장생, 선 채로 맞다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는다.
공길, 보다가 문가로 향한다.
장생, 달려가 문을 등지고 공길을 막아선다.
꼭두쇠, 공길을 밀치고 장생을 계속 팬다.
장생, 매를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끝까지 문 앞에 주저앉아 물러서지 않는다.
꼭두쇠, 옆에 있던 징을 들어 장생의 머리를 내리친다.
엄청나게 큰 징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장생,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공길의 모습이 아득히 멀어지는 걸 느끼며 정신을 잃는다.


대가집 사랑채-밤

공길, 양반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공길의 옆에 각시탈 놓여 있다.


대가집 행랑채-밤

장생 누워 있고, 광대1이 장생 곁에 앉아 있다.
장생 눈을 뜬다.

광대1
이놈아, 먹고살려고 지 마누라도 파는 세상이야.
염병하고, 왜 남의 팔자에 끼어들어 매를 벌어.

장생 멍하니 방을 둘러본다.
벽에 걸린 말뚝이탈이 눈에 들어온다.
나란히 걸려있던 각시탈은 없다.
장생 말뚝이탈을 노려보듯 계속 본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자,
탈이 걸린 벽 아래 방바닥에 (남자, 여자) 한 쌍의 작은 손 인형 놓여있다.


대가집 사랑채-밤

양반, 공길에게 각시탈을 씌우고 공길의 웃옷을 벗긴다.
공길 무표정하게 양반의 손길에 몸을 맡긴다.
양반, 공길의 맨 살을 느낀다.

문이 부서질 듯 열린다.
양반 놀라 보니,
장생이 말뚝이탈을 쓰고 서 있다.
공길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치부를 보인 듯 부끄럽다.

장생
(문가에 서서)
나와!

공길 움직이지 않는다.
장생, 공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챈다.
공길 눈을 피하며 버틴다.

장생
(무겁게)
일어나.

공길
놔.

공길 잡혔던 손을 빼며 돌아앉는다.
양반 당황하다 옷을 추스르며 밖으로 나간다.

양반(off-sound)
여봐라!

장생
(공길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래, 같이 맞아 죽자.

양반(off-sound)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각시탈, 고개를 돌려 말뚝이탈을 바라본다.


대가집 마당-밤

장생, 공길의 손을 잡고 대청을 내려와 대문 쪽으로 달린다.

양반
저 놈 잡아!

어느새 노비들이 달려와 한 발 앞서 문을 닫고 막아선다.
장생과 공길 뒷걸음질치며 마당 중앙까지 물러선다.
노비들, 장생과 공길을 경계하며 다가서다 일제히 장생을 덮친다.
그사이 집사 서둘러 대문을 열고 달려 나간다.
장생 괴성과 함께 몸부림을 치자 노비들 우르르 넘어진다.
노비들 마당에 있던 농기구들을 집어 들고 장생을 다시 조여 온다.
장생, 공길을 뒤로 숨긴다.
장생의 뒤로 돌아 간 노비가 몽둥이를 내리친다.
장생, 휘청하다 앞에 있는 노비를 안고 쓰러지며 그 노비가 들고 있던 낫을 빼앗아 든다.
거칠게 낫을 휘두르자 노비들 틈을 보인다.
화려한 몸놀림으로 노비들을 차례로 쓰러뜨린다.
공길의 손을 잡고 마당을 가로 질러 달린다.
거의 문에 다다랐는데 꼭두쇠와 광대들, 재촉하는 집사 뒤를 따라 허겁지겁 들어온다.
꼭두쇠, 탈을 쓰고 있는 장생을 보고 뜨악한다.

꼭두쇠
야밤에 탈 쓰고, 아주 환장을 해라.

꼭두쇠, 노비에게서 몽둥이를 뺏어 든다.

꼭두쇠
어디 한번 죽어봐라.

꼭두쇠 천천히 다가선다.
장생과 공길 탈을 벗는다.
장생 힘껏 낫을 내리 찍는다.
꼭두쇠 몽둥이로 낫을 막는다.
낫이 몽둥이에 박힌다.
장생 몽둥이에 박힌 낫을 빼려하지만 꿈쩍 않자 당황한다.
꼭두쇠 낫이 박힌 몽둥이를 휘두른다.
장생, 손에 든 탈로 몇 차례 몽둥이를 막는다. 그러다 탈이 박살난다.
광대들 기다렸다는 듯이 장생과 공길에게 달려든다.
장생 날렵하게 피하며 광대들을 쓰러뜨리다 꼭두쇠의 몽둥이에 맞고 쓰러진다.
공길과 장생 꼼짝없이 붙들린다. 노비들과 광대들, 공길과 장생을 주저앉힌다.
꼭두쇠 몽둥이에 박힌 낫을 빼어 든다.

꼭두쇠
다신 도망 못 가게 해주지.
잡아!

광대1과 광대2, 장생의 발목을 잡는다.
꼭두쇠, 장생의 발뒤꿈치에 낫을 댄다.
공길, 순간적으로 노비들을 뿌리치며 꼭두쇠에게 달려들어 낫을 빼앗아,
꼭두쇠의 얼굴에 휘두른다.
꼭두쇠, 얼굴을 잡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공길, 자기가 해 놓고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다.
광대들 깜짝 놀라 꼭두쇠에게 모여들어 살핀다.
장생, 공길을 잡아 끌 듯 해 그 틈을 타 도망친다.
노비들과 광대들 쫓는다.


어느 무 밭-낮

공길과 장생 밭도랑을 걷는다.
장생 주위를 둘러보다 아무도 없자 공길을 끌고 밭으로 내려선다.
장생, 무를 하나 뽑아 이빨로 껍질을 벗기더니 공길에게 내민다.
공길, 비위가 상하는지 잠시 망설이는데 장생이 입에 쳐 넣는다.
공길이 한 입 베어 물자 장생도 먹는다.


어느 들길-낮

공길과 장생, 땅과 하늘이 맞닿은 길을 걷고 있다.

장생 저 만치 앞에 막대기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가 집어 든다.
공길을 돌아보더니 맹인처럼 막대기를 더듬어 짚으며 걸어온다.

공길, 장생을 멍하니 바라본다.
굳었던 표정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주위를 살피더니 막대기를 하나 집어 들고 맹인이 된다.
공길과 장생, 마주 걸어오다 부딪친다.
둘만의 맹인 소극(笑劇)을 한다.

공길
아야! 아 이놈아, 눈 달아 뒀다 뭐해?

장생
아 이놈아, 눈 달아 뒀다 뭐해?

공길
눈이 삐었냐?

장생
눈은 안 삐고 산 넘다가 다리를 삐끗했지.
근데 이 소리가 강 건너... 강봉사?

공길
이 냄시 들 질러... 봉봉사?

장생
아이고, 이거 반갑구만.

만나려고 하는데 자꾸 엇갈린다.

장생
이봐,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또 엇갈린다.

공길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또 엇갈린다.

장생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공길
아, 너 거기 없고 나 여기 있지.

엇갈리다 만난다.
장생, 장난스럽게 공길을 덥석 안는다.
공길, 장생을 뿌리치다 휘청하더니 한데 엉켜 언덕 아래로 구른다.
한참을 엉킨 채 구르던 공길과 장생, 몸이 멈추자 대자로 눕는다.
하늘이 높고 맑다.

장생, 얼굴 옆에서 풀을 뜯어 풀피리를 분다.
풀피리를 불다 허리춤에서 남녀 손 인형을 꺼내 공길에게 건넨다.
공길, 손 인형을 보고 반색을 하며 기뻐한다. 손에 낀다.
장생의 풀피리 소리 구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공길, 누운 채 손 인형을 움직이며 복화술을 한다.

공길
(여자 인형을 움직이며 여자 목소리로)
가지 마시와요.
(남자 인형을 움직이며)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도는 인생,
날 붙잡지 마오.
(여자 인형)
안돼요. 가긴 어디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장생 풀피리 불던 걸 멈추고,

장생
(과장되게 굵은 목소리로)
대장부 가는 길을 막지 마라.
(몸을 일으켜 앉으며)
한양으로 가자!
큰 판에서 놀아야지.

공길, 일어나 앉아 장생을 쳐다본다.


도성문-낮

한양 시내로 들어가는 어느 도성문 앞.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문 사이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우마차들.
공길과 장생, 도성문을 올려다보고 있다.

장생
(도성문 현판을 올려다보며 탄성처럼)
한양이다.

공길과 장생, 기대에 찬 눈빛을 나눈다.
큰 짐을 진 뚱뚱한 아낙 하나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공길과 장생 앞을 지난다.
장생, 그 아낙의 동작을 과장되게 따라하며 뒤를 따른다.
공길, 씨익 웃다가 장생보다 더 크고 경쾌한 동작으로 장생을 앞질러 간다.
장생, 다소 의외라는 듯 보다 서둘러 공길을 따라 간다.
공길과 장생, 도성문을 통과한다.

언덕 아래로 한양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와!’하고 감탄하는 공길과 장생.

한 무리의 관졸들과 유생들이 공길과 장생 앞을 지나 언덕으로 향한다.
호기심에 어린 눈빛을 반짝이며 공길을 잡아끄는 장생.


 어느 무덤가-낮

위 아래로 양반들의 무덤으로 보이는 봉분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한 무덤가에 모여있다.
까치발을 하고 무슨 일인지 살피려는 공길과 장생.
사람들에 가려 잘 안보이자 나무 위 가지로 올라가 이들을 살핀다.

포졸들 한 무덤을 파헤치고 있다.
관복 입은 사령, 무덤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대부로 보이는 노인 거의 실신 상태로 통곡을 하고 있다.

노인
안 된다. 이 놈들!

하며 무덤 속으로 뛰어들려 한다.

노인
차라리 날 죽여라.

사령
(노인을 밀치며)
비켜라. 어명이다!

노인
네놈들이 사람이냐?!

노인 발악하며 달려들다 포졸들의 힘에 밀려 나뒹굴었다 달려들기를 반복한다.
포졸들 연신 무덤 밖으로 흙을 퍼낸다.
무덤 속에서 유골이 드러난다.
무덤 속을 기웃거리던 사람들 경악한다.
포졸들의 손에 유골이 들려 나온다.

노인
안 된다, 이 놈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날 죽이라 하지 않느냐.

하다 거의 실신한다.
사령 종이를 펼쳐들고 읽기 시작한다.

사령
어명이다!
대역죄인 김만서는 그 몸이 죽었다하나
사초에 거짓을 적어 선왕을 능멸한 대역부도한 죄를 지은
바 종묘에 고제하여...

사령이 어명을 읽는 동안 구경꾼들 쑥덕거린다.
장생과 공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령
배향중신으로 있는 위폐를 묘정에서 내쫓고 무덤을
파해쳐 부관참시한 후 쇄골표풍하노라!

사령, 손짓을 하자 도끼를 들고 섰던 포졸이 유골을 내리친다.
유골이 조각난다.
발악하던 노인, 박살나는 유골을 보고 결국 실신한다.
지켜보던 공길과 장생, 놀란다.

장생
죽어 없어진 왕 때문에 저 지랄이야?

사령
뼈를 갈아 없애라!

마을 사람들 뜨악한다.
바람에 뼛가루가 흩날려 진다.
사령과 포졸들 노인을 들쳐 업고 사라진다.
마을 사람들 그 뒤를 따라 사라진다.

공길과 장생, 어느새 가지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있다. 

장생
살벌하네.

공길
그러게.
왕한테 잘못하면 저승까지 따라 오네.
근데 왕이 누구지?

장생
왕?
왕이 왕이지 누구야.

공길, 몸을 튕겨 가지에 걸터앉더니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장생
(몸을 대롱대롱 흔들며)
조~오타.

공길
거꾸로 보는 게 그렇게 좋아?

장생
좋지. 뒤집어 보면 신나잖아.

공길
장생아. 한양에서도 우리 재주가 먹힐까?

장생
걱정도 팔자다.
(휙 돌아 가지에 올라앉는다)
한양이라고 별거냐.
 
공길, 장생의 싱거운 소리에 씨익 웃으며 멀리 보이는 한양거리를 내려다본다.
공길과 장생, 동시에 빙 돌아 땅에 탁 내려선다.


 (한양) 저자거리-낮

추레한 몰골의 공길과 장생,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저자거리를 헤매고 있다.
좌판 위의 떡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공길과 장생, 침을 꼴깍 삼킨다.

장생
먹고 싶지?

공길 멋쩍은 듯 웃는다.
공길과 장생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떡장수.

장생
판을 벌릴 만한 곳이 있나 휘~ 둘러보고,
한 판 논 다음에 배 터지게 먹자.

그 때, “이봐!”하고 누군가 부른다.
떡장수가 고개를 돌린 사이 재빨리 떡을 한줌 쥐어 주머니 속에 넣는 장생.
길가에 자리를 깔고 앉은 점쟁이가 공길을 쳐다보고 있다.

장생
(태연스럽게)
저요?

점쟁이
(장생을 보다 공길을 보며)
너 말고. 그래, 네 놈 말이야.

공길 머뭇거리는데,
장생, 공길을 끌고 점쟁이에게 간다.
공길과 장생, 점쟁이 앞에 쪼그려 앉으려는 순간,
점쟁이가 주저앉는 공길의 불알을 덥석 쥔다.

장생
(점쟁이의 손을 뿌리치며)
뭔 짓이요?

점쟁이
삼신할매가 불알을 엄한데 달았어.
쯧쯧쯧...

장생
이 늙은이가 뭘 잘못 먹었나?

점쟁이
이것만 안 달고 났으면 왕하고도 붙어먹었을 팔잔데.

장생
(공길을 바라보다)
헛소리 말고 나 좀 봐주쇼.
내 팔자는 어떤가?

점쟁이
복채는?

장생
(머뭇하다 아랫춤을 내밀며)
자, 내 것도 만지고 봐주쇼.

점쟁이
(어이없어 허허 웃더니)
어디 보자.

점쟁이, 장생의 얼굴을 쳐다보다 공길과 장생을 번갈아 본다.

장생
왜요?
내 불알도 잘못 달렸소?
장생이요, 내 이름이. 장~생.
이름대로 오래 살겠는 가 찬찬히 잘 좀 봐주쇼.

점쟁이
네 놈들, 갈라 서!

공길과 장생 마주 본다.

장생
우리가 부부요, 갈라서고 말고 하게?

그 때 저 만치서 흥겨운 풍악소리 들려온다.
점쟁이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장생이 이끌리듯 일어나 공길의 손을 잡고 달려간다.
점쟁이 걱정스런 눈길로 공길과 장생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주막 앞-낮

육갑 칠득 팔복, 꽹과리 징 등 악기를 하나씩 들고 장단을 친다.
구경꾼들 몰려 있다.
장생, 공길의 손을 잡고 구경꾼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간다.
공길, 광대들을 주시한다.
장생, 품에서 훔친 떡을 꺼내 광대들을 보고 있는 공길에게 건넨다.
공길, ‘하여간 못 말려~’ 하는 표정으로 장생을 본다.
장생, 씨익 웃으며 떡을 베어 물고 광대들을 본다.
육갑, 칠득과 팔복의 장단에 맞춰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놀이판을 휘젓는다.
구경꾼들 웃는다.

육갑
(꽹과리로 장단을 정리하며)
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이네 몸이 어르신들 앞에서 살판을 한번 놀아 보것는디,
잘 보시고 볼만하면 엽전이나 몇 푼씩 던져 주쇼.
자~ 그럼 살판나게 시작합니다.

육갑, 긴 멍석 위에서 앞으로 재주(앞곤두)를 넘는다.
구경꾼들 그럭저럭 재밌어 한다.
육갑 이번엔 뒤로 넘기(뒷곤두)를 하고 나름대로 멋지게 착지한다.

육갑
(칠득에게)
내 정신이 어질어질헌데,
엽전 몇 닢이라도 좀 던져주면 힘을 내서 좀 더 놀아보고
안 그러면 이만 할라네.

칠득
(구경꾼들을 향해)
샌님네들 어쩔깝쇼?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엽전 몇 닢 던져줘야 계속
논다는데, 그만 내칠까요?

팔복, 소쿠리를 들고 구경꾼들 사이를 누비며 엽전을 구걸하는 아양을 떤다.
구경꾼 몇, 엽전을 던져준다.
장생, 엽전을 본다.
먹다 남은 떡을 공길에게 건네주고 공길이 뭐라 물을 세도 없이 불쑥 앞으로 나선다.

장생
에라, 이놈아.
그것도 재주라고 넘고 엽전을 바라냐?

육갑, 인상이 구겨진다.
칠득, 장생을 막아서려 하는데 육갑이 두고 보려는 듯 제지한다.

장생
자, 샌님네들 진짜 재주 한번 보실랍니까?

장생, 육갑을 보며 손에 침을 퉤퉤 뱉더니 공길을 향해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낸다.
장생의 땅재주가 시작된다.
육갑보다 훨씬 빠르고 유려하다.
구경꾼들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공길, 자기가 재주를 넘기라도 하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장생, 착지하고 씨익 웃으며 구경꾼들을 둘러보다 육갑과 눈이 마주친다.

육갑
(구경꾼들의 반응에 당황하다 다급하게)
허허~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군지,
곳 잘 노네 그려.
이왕 한양까지 왔으니 내 한 수 가르쳐 주마.
눈 똑똑히 뜨고 배워가거라, 이놈아.

육갑, 땅에 놔둔 장대를 집어 들더니 달리다 장대를 집고 연속해 재주를 넘는다.
구경꾼들 탄성.
장생, 빙긋이 웃으며 공길을 본다.
공길 역시 여유 있는 표정으로 미소 짓는다.

장생
네 이 놈!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진작 선뵐 것이지.
그러~나!
여기 모이신 샌님들 재주 보시는 안목이 워낙
고매하신지라,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놈아!
안 그렇습니까요?

구경꾼들 “그럼, 그럼”하며 즐겁게 동조한다.

장생
이번엔 이 놈이 쌍으로 넘는 재주를 선뵐테니,
눈들 크게 뜨고 잘들 보쇼.

장생, 공길을 쳐다본다.
구경꾼들, 공길에게 시선을 모은다.
공길 나선다.
구경꾼들, 연약해 보이는 공길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장생과 공길, 완벽한 하모니로 고난이도 땅재주를 선보인다.
구경꾼들 탄성 더 커진다.
육갑의 인상이 붉으락푸르락한다.

살판 구경꾼1
이 놈들, 엽전을 한 놈한테 몰아 줄테니,
어느 놈 재주가 살판이고,
어느 놈 재주가 죽을 판인지 화로 살판으로
결판을 한번 내봐라.

구경꾼들 “그래, 그래”하며 동조한다.

(jump)

칠득과 팔복, 두 개의 화로에 뻘겋게 달아 오른 숯을 옮겨 담고 있다.
긴장하며 육갑을 바라본다.
육갑, 결연한 표정으로 화로에 담기는 숯을 바라본다.
칠득과 팔복, 화로를 하나씩 들고 장생과 육갑에게 다가와 전한다.
장생과 육갑, 빨간 숯이 가득한 화로 하나씩을 받아들고 나란히 선다.
칠득과 팔복, 긴장을 고조시키는 장단을 친다.
장생과 육갑, 긴장되는지 침을 꼴딱 삼킨다.
힘찬 징소리.
장생과 육갑, 천천히 뒤로 돌아선다.
육갑, 비장한 표정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장생, 여유 있는 표정으로 화답하고 앞에 있는 공길을 본다.
장생과 육갑, 동시에 화로를 든 채 뒤로 재주를 넘는다.
완벽하게 성공하는 장생.
육갑은 숯을 뒤집어쓰고 옷에 불이 붙는다.
육갑, 발버둥치고 칠득과 팔복 달라붙어 불을 끄느라 난리를 피운다.
육갑에게 물이 쏟아진다.
옷에 붙었던 불이 꺼진다.
육갑, 겨우 정신을 차리고 빈 물 양동이를 들고 서있는 공길을 본다.

구경꾼들 폭소를 터뜨리며 장생 앞으로 엽전을 던진다.


 주막 마당-밤

장생 엽전을 센다.
육갑 칠득 팔복, 입맛을 다시며 엽전을 쳐다본다.

육갑
헤헤헤.
육갑이요.
이놈은 칠득이, 저 놈은 팔복이.

장생, 그저 엽전만 센다.

육갑
노는 걸 보아하니,
우리 같은 떠돌이들하곤 근본이 다르신 것 같은데,
어느 패에 속한 분들이요?

장생 고개를 번쩍 들어 육갑을 본다.
육갑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눈을 피한다.
장생 엽전을 반으로 나눈다.
육갑 기대감에 눈이 동그래진다.
장생 반을 공길에게 준다.
육갑 실망한다.

장생
한양에서 젤 큰판이 벌어지는 곳이 어디요?

육갑
(얼굴이 부어서)
한양에 볼만한 판 없어진지 오래요.

장생
왜요?

육갑
몰라 묻나?
왕이 자기 사냥터를 만든다고 도성 근방 일백리 안에
사는 사람들을 죄다 몰아냈잖아.
도성에 드나드는 사람이 반에 반으로 줄었으니 큰판을
벌릴 수가 있나?
(잠시 장생의 눈치를 살피다가)
거, 큰판이 하나 있긴 한데.

장생
그래요? 어디요?

육갑, 공길과 장생의 엽전을 건네다 본다.


 투전판-밤

육갑 패를 쪼고 있다.
육갑 맞은편에 투전꾼1,2 앉아 있고,
육갑의 뒤로 공길과 장생, 칠득과 팔복 둘러앉아 있다.

육갑 패를 쪼더니 판돈을 두둑하게 건다.
투전꾼1,2 그 만큼씩 판돈을 건다.

육갑
(씨익 웃으며)
죄송해서 어쩌나.
가보(9)요.

투전꾼1,2 얼굴이 일그러진다.
육갑 엽전을 쓸어 모아 자기 앞으로 가져온다.

투전꾼1
저 놈 저, 투전판 돈 훑는 게 왕이
팔도 처녀들 훑듯 하네.

육갑
(넉살 좋게)
그 정도 하려면 아직 멀었지.

육갑이 신이 나서 다시 패를 섞어 돌린다.
그 사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주고받는 투전꾼1,2. 뭔가 심상치 않다.

투전꾼1
(패를 쪼며)
어디~ 나도 녹수년처럼 팔자 좀 한번 고쳐보자.

장생
(오가는 얘기를 듣다가 끼어들며)
누구요?

투전꾼1, 시골 촌놈 깔보는 눈으로 장생을 쳐다본다.

투전꾼2
녹수를 몰라?
왕을 치마폭에 싸고 앉은 궁녀 말이야.

투전꾼1
고 년이 왕의 눈에 들기 전에 날리던 기생 아니었소?
내 투전해서 딴 돈 죄 그년 치마 속으로 들어갔지.

칠득
녹수를 알아요?

투전꾼1
알다마다.
내 녹수의 기둥서방이나 다름없었으니,
족보를 따지자면 내가 왕하고 동서요, 동서.

투전꾼2
에끼, 이 양반아!

육갑 있는 돈을 다 건다.
투전꾼2 패를 던진다.
투전꾼1, 씨익 웃더니 그 만큼 돈을 건다.
육갑 패를 보이며 판돈을 가져가려 한다.
투전꾼1, 육갑의 손을 잡으며 패를 내보인다. 더 높다.
육갑 울상이 된다.
지켜보던 공길 장생 칠득 팔복 당황한다.

투전꾼1
자, 밑천이 거덜난 거 같으니 이만.

하고 일어서려 하는데,

육갑
(버럭)
여보쇼!
(투전꾼1 바라보자 비굴하게)
깨평.

투전꾼1 엽전 몇 닢 던져준다.


 주막 마당-밤

공길과 장생, 육갑 칠득 팔복 평상 위에 앉아 있다.
주모가 술병을 들고 오자 육갑이 비굴한 표정으로 술병을 향해 손을 내민다.
주모, 술병이 깨지라 상위에 술병을 탁 내려놓는다.

주모
낼모레야!
그 때까정 밀린 삯 안내면 관아에 신고해
곤장으로 때우게 할 줄 알어!

하더니 획 돌아간다.
칠득과 팔복, 걱정스러운 눈으로 육갑을 바라본다.

육갑
(자기 사타구니를 툭툭 치며)
걱정 마, 이놈들아.
다 때우는 방법이 있어.
(장생과 공길의 사발에 술을 따르며)
자, 마셔요, 마셔.
궂은 날 있으면 맑은 날도 있고.

장생
내 돈 어쩔 거요?

육갑
아, 그거.
(잠시 생각하다)
내일 다시 합시다.
오늘처럼 내가 살판을 놀고 있을테니,
형님이, 헤헤헤... 형님이라고 해도 되죠?
형님이 오늘처럼 끼어드쇼.

장생 대답 없이 술을 한번에 들이키더니 소맷자락으로 입을 훔치며 공길을 본다.
공길, 고개를 가로 젓는다.

육갑
(No하는 공길을 보고)
엥? 왜요?
봤잖아?
벌이가 장난이 아닌데 왜?

장생
내, 오늘보다 더 벌게 해준다면
내가 하잔대로 할래? 

육갑 칠득 팔복, 술을 마시다 말고 귀가 솔깃해 공길을 쳐다본다.
장생, 공길을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주막 앞-낮

장생과 공길, 탈을 쓰고 연산과 녹수를 풍자하는 소극을 한다.

칠득, 탈을 쓰고 보기에도 내시처럼 허리를 숙이고 종종 걸음으로 나온다.
팔복, 역시 탈을 쓰고 뒤 따라 오며 부른다.

팔복
어이~ 김내관.
방울소리 요란하게 어딜 그렇게 바삐 가나?

칠득
이 놈이. 방울이 있어야 소리가 나지.
없는 놈끼리 놀려먹기냐.

팔복
이상하네.
내 분명히 방울 소리를 들었는데.
내 소리였나.
(하체를 요란하게 흔들어 댄다)

구경꾼들 웃는다.
길을 가던 연산의 시종내시 김처선, 구경꾼들 사이로 모습을 나타낸다.

공길(녹수) 마당터로 나와 주위를 살피더니 주저앉아 오줌을 싼다.
칠득과 팔복, 숨어 엿보듯 한다.

팔복
저거 숙용 장씨 아닌가?

칠득
왜 아닌가. 근데 저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팔복
내 소문을 듣자하니 녹수 저 년이 천출이라
저렇게 싸야 싸는 거 같다고 매번 남들 눈을
피해 저런다고 하더니 참말일세.

장생(연산)이 나서 주위를 살피더니 공길 뒤로 가 선다.
칠득과 팔복, 다시 몸을 숨기는 척.
장생 과장되게 크게 만든 물건을 꺼내더니 오줌을 싸는 시늉을 한다.
공길과 장생, 오줌을 다 쌌는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다 서로의 몸이 닿아 깜짝 놀란다.
뒤돌아보고 서로를 확인하곤 다시 한번 놀란다.

구경꾼들 웃는다.
연산의 시종내시 김처선이 계속해서 소극을 지켜보고 있다.
소극 계속 된다.


 주막 마당-밤

육갑의 웃음소리 떠들썩하게 들려온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술판을 벌이고 있다.

육갑
형님, 매일 합시다. 매일!
아니, 하루에 서너 차례씩 합시다. 아예.

칠득
맨날 양반하고 중들이나 가지고 놀 생각만 했지,
왕을 가지고 놀 생각은 왜 못했을까?

육갑
왕을 언제 봤어야 말이지.

칠득
그럼, 형님들은 언제 왕을 봤답니까?

장생
그걸 봐야 아나?

육갑/칠득/팔복
?

장생
멋대로 놀면 돼.
그럼 그게 왕이지.

그 때 주모가 술병을 가지고 들어온다.

주모
(술병을 상 위에 내려놓으며)
이거 더 들어요. 거저야, 거저!

칠득과 팔복, 의심의 눈초리로 육갑과 육갑의 사타구니를 번갈아 본다.
육갑, 칠득과 팔복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손을 흔들며 아니라고 부정한다.

육갑
웬일이슈?
못 내쫓아 안달을 하더니만.

주모
(콧소리로 아양을 떨며)
내가 언제?
쭉 있어요, 쭉~
아까 놀이가 끝나고 나니까 목을 축이려는
구경꾼들 때문에 주막이 북새통이었다니까.
(육갑을 보며)
그나저나 거시기가 정말 크데.

육갑, 당황하고 칠득과 팔복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육갑을 바라본다.
육갑, 결백을 항변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친다.

주모
하긴 왕이면 그 정도는 돼야지. 암~

우리의 광대들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 모두 기분 좋게 미소 짓는다.


 주막 마당-밤

공길이 평상 위에 혼자 앉아 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새 장생이 다가와 공길 옆에 앉는다.

공길
안 잤어?

장생
육갑이놈 코고는 소리에 잘 수가 있어야지.
(엽전 주머니를 흔들며)
실은 이 놈 땜에 잠이 안와서.

공길
좋아?

장생
어때? 한양에 오길 잘했지?
역시 한양은 판이 틀리지 않냐?

공길
(대답 없이 달을 올려다보며)
보름이네.
한양 달은 더 큰 거 같은데.

마침 달이 구름 사이를 지난다.


 주막 앞-낮

소극이 벌어지고 있다.
구경꾼들 더 많이 늘어났다.
공길(녹수) 나와 주위를 살피더니 주저앉아 오줌을 싼다.
내시역의 칠득과 팔복, 숨어 엿보듯 한다.
장생(연산) 다가와 공길의 뒤에 서서 오줌을 갈긴다.
구경꾼들 웃는다.

소극 구경꾼1
저게 누군가?

소극 구경꾼2
길고 푸른 물, 장녹수.

소극 구경꾼1
아~

소극 구경꾼2
자네 그 길고 푸른 물에서 헤엄치는 오리가 무슨
오린지 아나?

소극 구경꾼1
?

소극 구경꾼2
탐관오리!

구경꾼1과 구경꾼2 함께 웃다가 다시 소극에 집중한다.

연산의 시종내시 김처선,
구경꾼들 옆에서 이들의 말을 들으며 공길과 장생을 바라보고 있다.

공길과 장생, 오줌을 다 쌌는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다 서로의 몸이 닿아 깜짝 놀란다.
뒤돌아보고 서로를 확인하곤 다시 한번 놀란다.

구경꾼들 또 웃는다.

장생
아니, 숙용!
예서 뭐 하는 거요?

공길
뭐 좀 급하게 버릴게 있어서.
그러는 전하는?

장생
나야, 후원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라고
성은을 내리고 있었지.

구경꾼들 연신 웃으며 박장대소한다.
김처선도 구경꾼들 사이에서 씨익 웃는다.

(jump)

후궁 역의 육갑, 여장을 하고 바닥을 뒹군다.
애를 낳느라 용을 쓴다.

육갑
아이구 배야, 아이구 배야~

하며 장생의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

장생
힘 줘, 힘!

구경꾼들 웃는다.

육갑 마지막 비명을 지른다.
장생, 육갑의 다리 사이에서 아기 모양의 인형을 꺼내든다.
아기 인형에도 큰 물건이 달렸다.
공길 심사가 뒤틀린 표정으로 장생을 보다 육갑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쥐고 싸운다.
장생 그 모습에 아랑곳 않고 아기를 안고 춤을 춘다.

장생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디 보자.
이마도 내 닮았고, 코 큰 것도 내 닮았다.
어디한번 얼러보자.
둥~ 둥~ 내 아들.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느냐,
강풍에 날려 왔나.
어허 둥둥 내 아들.

신명나는 장단과 함께 공연이 끝난다.
구경꾼들 모두 나와 신명나는 가락에 맞춰 뒤풀이 춤을 함께 춘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모두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엽전을 구걸한다.
구경꾼들 엽전을 꺼내 소쿠리에 던져 넣는다.
엽전을 받는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한결같이 신이 난 표정이다.

그 때, “물렀거라!”하는 호령이 들린다.
육갑 ‘뭐야?!’하고 돌아보면 의금부 도사가 나졸들을 이끌고 다가온다.

의금부 도사
저 놈들을 모두 포승 해 의금부로 압송하라!

나졸들, 포승줄을 꺼내 들고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에게 달려든다.
구경꾼들 화를 입을까 겁먹고 흩어진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어안이 벙벙해 서로 얼굴만 쳐다본다.


 의금부-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모두 곤장대에 엉덩이를 드러내 놓고 묶여 있다.
김처선과 의금부 도사, 곤장대 앞에 나란히 서있다.

의금부 도사
왕을 능멸하고도 목숨을 부지할 줄 알았더냐?

장생
저자거리에 나가보세요.
개나 소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왕 얘긴데,
좀 논게 뭐 대수요?

육갑 칠득 팔복 동조의 뜻으로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든다.

의금부 도사
무엄하다!

육갑
(조심스럽게)
거, 왕의 물건 땜에 그러시는 거면
우리 생각엔 그래도 왕인데!
아무래도 그 정도는 돼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의금부도사
광대놀음에도 정해진 법이 있다는 걸 몰랐느냐?
‘무릇 광대들이 소극을 만들어 하되 역대 제왕, 제후,
충신, 열사. 선현의 신상으로 장식하며 희롱하면...'

모두 침을 삼키며 초조한 표정으로 듣다가,

의금부 도사
곤장이 백대다.

하는 소리에 경악한다.

장생
(정색을 하며)
희롱한 거 아니라니까요!

의금부도사
이놈이!
여봐라, 저 놈들을 당장.

장생
(다급하게 말을 자르며)
희롱 당하는 놈이 봐야 그게 희롱이지
안 보는 데서야 뭔 짓을 못하오.

칠득
맞아. 까놓고 말해.
당신들도 왕이 안 보는 데서는 흉 볼 거 아니유!

칠득 자기가 해 놓고서도 멋진 말이라 생각해 으쓱하다 육갑이 눈총을 주자 찌그러진다.

의금부 도사
여봐라. 뭣들 하느냐?
저 놈들을 매우 쳐라.

나졸들 모두의 엉덩이에 일제히 물을 확 붓는다.
곤장대가 치켜 올라간다.

장생
잠깐!

김처선, 손을 번쩍 들어 나졸들을 멈추게 한다.
나졸들, 곤장대를 올린 채 김처선을 바라본다.

장생
내 곤장 백대에 목숨 부지했다는 사람 못 봤소.
그냥 죽는 건 억울하니 왕한테 보이기나 하게 해주쇼.

김처선
뭐야?

장생
자기를 능멸하는데 그걸 보고 웃을 사람은 없으니,
왕이 보고 웃으면 그게 왕을 능멸한 게 아니란
증거가 아니고 뭐겠소?!
안 그렇소?!

김처선
(짐짓 생각하는 듯하다가)
그래? 좋다.
(의금부 도사에게)
내 전하께 아뢰고 분부대로 시행할테니,
저 놈들을 옥에 가두도록 하시오.


김처선 묘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짓는다.
공길과 육갑 일행, 침을 꼴깍 삼키며 김처선을 본다.


 의금부 옥-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하나같이 천장을 쳐다보며 연신 한숨을 쉰다.

육갑
병신 육갑한다더니 내가 완전 그 짝이네.
멋모르고 저 놈한테 홀려 왕을 조롱하다니
내가 정신이 나갔지.

칠득
(장생에게)
미쳤어요?
어쩌자고 그런 소릴 해!
형님이 왕이면,
(일어나 오줌 싸는 시늉을 하며)
이걸 보고 웃겠냐고?! 

장생
곤장 백대 맞으면?
어떻게 겨우 목숨은 부지한다고 치자.
그 몸으로 광대짓 하고 살 수 있을 거 같아?
젠장, 어차피 살판 아니면 죽을 판이야!

육갑
이건 죽을 판이여.

칠득
맞어.
이건 뒤질 판이여.

팔복
난 맞을래.
맷집하면 나야.

장생, 책임을 전가하는 육갑 칠득 팔복에게 몰린다.

장생
(설득조로)
좋아, 니들 맘대로 해.
(옥 밖의 간수를 향해)
여보쇼, 간수 양반!
이 놈들은 몸으로 때우겠다니 데려가쇼.

육갑 칠득 팔복, 장생의 예기치 않은 행동에 당황한다.

육갑
아니, 그게 아니고...
(하다 절망하고)
에이 씨, 환장 하것네.

장생
난 할거야.

하고 공길을 본다.
공길, 자신을 바라보는 장생에게 자신도 하겠다는 의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장생
(육갑 칠득 팔복에게)
죽기 살기로 놀아보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육갑 칠득 팔복에게.

공길
뭐가 겁나? 어차피,
외줄 타다 떨어져 병신 되는 광대가 한둘이야?
살판 놀다 목 부러져 죽는 광대가 한 둘 이냐고?!

육갑 칠득 팔복, 전에 없는 공길의 모습에 놀란다.
공길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던 장생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진다.
그 때 김처선이 다가온다.

장생
(옥사 안에서 나무 틈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뭐랍니까? 본답디까?

김처선
임금께서 내일 연회에서 너희들의 소극을 보자 하신다.

장생
거보쇼, 내 뭐랬소.

김처선
대신, 너희들의 소극이 웃기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라 명하셨다.

하고 옥사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공길과 육갑 칠득 팔복, 김처선의 말에 얼굴이 하예진다.
장생, 동요하는 공길 등을 보더니 얼른 김처선을 향해

장생
대신 왕이 웃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상 차려주기요.
알았죠?

하고 호기를 부린다.
간수들, 장생의 배짱이 놀랍다는 듯 바라본다.


 궁 연회장-낮

기품 있는 아악에 맞춰 무희들이 춤을 춘다.
중앙에 왕(연산)과 녹수가 춤이 재미없는 듯 무료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좌우로 놓인 긴 탁자에 중신들이 앉아 있다.

연회장 뒤 쪽.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연산 신경질적으로 탁자를 거푸 내려친다.
무희들 당황하며 춤을 멈추고 종종 걸음으로 사라진다.
연산 손짓해 김처선을 불러 뭐라 한다.
김처선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처선
금일 연회에 맞춰 전하께서 친히 광대들을 불러
소극을 즐기고자 하시니,
함께 보며 모두 즐기도록 하라.

광대들의 공연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린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탈을 쓰고 장단을 치며 등장해 연회장을 돈다.
아악과 달리 흥겹고 신명나는 장단에 연산과 녹수, 관심이 동하는 눈치다.
공길과 장생 탈속에서 연산을 본다.
중신들, 광대들의 등장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린다.

장생, 꽹과리 장단으로 가락을 정리한다.

장생
어허~ 
유세차 갑자년 삼월 초하루,
길일을 택하여 나랏님을 모시고
탈놀음을 하려고 열의 열성에 각 자손이 모여 정성을
드리오니...

장생의 사설 이어진다.

(jump)

칠득(김내관) 보기에도 내시처럼 허리를 숙이고 종종 걸음으로 나온다.
팔복(홍내관) 뒤 따라 오며 부른다.
저자거리에서와 달리 긴장하는 빛이 역력해 둘의 움직임이 어색하다.
탈속에서 반짝이는 공길과 장생의 눈동자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jump)

공길 주위를 살피더니 주저앉아 오줌을 싼다.
칠득과 팔복, 숨어 엿보듯 한다.

팔복
저거 숙용 장씨 아닌가?

칠득
왜 아닌가. 근데 저게 무슨 해괴한...
짓인가?

팔복
내 소문을 듣자하니 녹수 저 년이...

팔복 시선을 돌리면 사색이 되서 고갯짓을 해대는 칠득. 칠득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녹수와 눈이 마주치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다 장생을 쳐다본다.
장생, 긴장해서 어쩔 줄 모르는 칠득, 팔복에 전혀 웃을 기미가 없는 연산의 표정을 보고 낙담한다. 얼른 추스르고 예정에 없이 육갑에게 달려가 당황하는 육갑의 사타구니를 억지로 벌려 애기 인형을 꺼내는 장생. 연산 앞으로 달려간다.
장생, 진땀을 흘리며 연산을 웃기기 위해 연산의 면전에서 유난히 큰 액션으로 연기를 한다.

장생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디 보자.
이마도 내 닮았고, 코 큰 것도 내 닮았다.
어디한번 얼러보자.
둥~ 둥~ 내 아들.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느냐,
강풍에 날려 왔나.
어허 둥둥 내 아들.

소극이 끝났는데 연산은 끝내 웃지 않고 분위기 완전히 가라앉아 있다.
장생, 사색이 된다.
뒤에 선 육갑 칠득 팔복, 넋을 잃고 있다.
그때 공길이 갑자기 장생에게 쪼르르 다가가 즉흥적으로 에드립을 친다.

공길
그 애가 당신 씬 줄 아슈?

장생, 예정에 없던 공길의 행동에 당황한다.

장생
뭐? 너 왜 이래?

공길
(에드립을 계속 이어간다)
흥, 다 아는 소문을 당신만 모르는 구나?!

장생, 뒤늦게 공길의 에드립을 깨닫는다.

장생
(다시 흥을 내며)
그럼 이 애 씨가 따로 있다?

공길
내시 중에 불알 한쪽이 성한 놈이 있어
밤마다 후궁들하고 붙어먹었지!

장생
뭐야? 그 놈이 누구냐?
어서 일러라!

공길과 장생, 즉석으로 주고받는 대사가 호흡이 착착 맞는다.

공길
맨 입으로?

장생
요, 요망한 것.
그래 좋다. 입을 채워주지.
윗 입을 채워주랴, 아랫 입을 채워주랴?

공길
윗 입.

공길, 폴짝 물구나무를 서 사타구니를 장생의 면전에 댄다.

공길
자, 윗 입 대령이요.

가만히 지켜보던 연산,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포복절도한다.
녹수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중신들 천박한 광대놀음에 인상이 구겨진다.
공길과 장생, 연산의 웃음이 터지자 희열에 찬 눈빛을 반짝인다.
거꾸로 선 공길의 탈이 흘려 내리며 공길의 얼굴이 드러난다.
연산, 웃다가 탈이 벗겨지며 드러난 공길의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공길, 연산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몸을 바로 세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연산, 공길을 향해 걸어 나간다.
녹수, 걸어가는 연산을 본다.
장생 육갑 칠득 팔복도 얼른 몸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린다.
연산, 공길 앞에 다가와 선다.

연산
(공길에게)
고개를 들어라.

공길, 고개를 든다.
연산, 땀에 촉촉이 젖은 공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녹수, 공길을 바라보는 연산을 주목한다.

연산
니 이름이 뭐냐?

공길
공길입니다.

연산
(공길을 계속 바라보며)
여봐라.
내 이 광대들을 곁에 두고 내킬 때마다 불러
즐길 것이니,
궐내에 이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그 이름은, (잠시 생각하다)
그래, 놀 희(戱)에 즐길 락(樂)!
(일어나 큰소리로)
희락원으로 명하라.

공길과 장생 어안이 벙벙하다.
육갑 칠득 팔복도 마찬가지다.
연산 나가며 김처선을 바라보고 씨익 웃는다.
중신들 술렁인다.
김처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희락원 내실-밤

방 가운데 상다리가 부러지게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상 주위에 둘러 앉아 있는 육갑 칠득 팔복,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다.
장생도 상기된 표정이다.
공길, 곁눈으로 장생을 살핀다.

육갑, 진수성찬을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육갑
젠장, 난 그 자리에서 뒤지는 줄 알았어.
오금이 저려서 놀 수가 있어야지.

칠득
(공길의 손을 덥석 잡으며)
형님, 고맙수.

팔복
형님 아니면 다 죽었지 뭐.

공길, 칠득과 팔복의 공치사에 장생의 눈치를 살핀다.
장생, 공길이 바라보자 대견함과 자괴감이 섞인 미소를 짓는다.

장생
먹자.

하고 음식을 덥석 집어 먹는다.
눈치를 살피며 침을 삼키던 팔복이 먼저 음식을 입에 넣는다.

육갑
이 놈아. 죽다 살아나서 그게 먹히냐?

팔복, 음식을 씹던 입을 멈추고 장생의 눈치를 살핀다.

육갑
(장생에게)
형님, 근데 우리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여기서 살아야 하는거요?

팔복
왕이 희락원을 세우고 거기서 살라잖아.
어명 어기면 죽는 거 아냐?

칠득
그럼 매번 왕을 못 웃기면 죽는 거야?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장생
나가고 싶은 놈들은 나가.
난 안 나가.

육갑 칠득 팔복, 일제히 장생을 본다.
공길도 장생을 본다.

장생
왕이라고 대수야?
죽다 살아났는데 뭔 짓을 못해?
살기 위해 노냐? 놀기 위해 살지!

장생,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덥석 베어 문다.
공길도 입안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육갑 칠득 팔복, 머뭇거리다 음식을 먹으며 장생이 한 말의 의미를 되새긴다.
장생과 공길, 음식을 맛나게 먹다 눈이 마주친다.
누가 먼저 랄 것 없이 웃는다.


 궁 어전-낮

머리를 조아린 중신들 일제히 복창한다.

중신들(일제히)
아니 되옵니다!

연산 얼굴이 일그러진다.

연산
(짜증스럽게)
또 왜?

성준(영의정)
전하, 신 영의정 성준 아뢰오.

연산
당신 영의정인 거 아니까 그냥 말해.

성준
본디 연회에 광대패를 부를 때는.

연산
(말을 끊으며)
설마 법도 얘긴 아니겠지?

성준
그 규모를 대 중 소로 나누어 연회의 성격과 의의에 따라 법도를 지켜 하도록 정해져 있거늘.

연산
(또 말을 끊으며)
그런 법도까지 있어?
도대체 나라를 세워 법도를 만든 거야,
법도를 만들려고 나라를 세운 거야.
 
성준
전하!
어찌 천한 광대들을 궁에 들이십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극균(좌의정)
그러하옵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연산
황공하면 얘기를 하지 마.
황공하다면서 할 말은 다해요.

이극균
선왕께서는.

연산
(말을 끊으며)
또?
(정색을 하며)
아버지와 비교하지 말랬지?
당신, 내가 옛날 좌의정들 들먹이며 당신이랑
비교하면 좋겠어?

사관들 연산의 험한 말에 붓을 멈추고 연산을 본다.

연산
당장 희락원을 설립하시오.

성희안
신 이조판서 성희안 아뢰오.
어명이라 하시면 받들지 않을 수 없사오나.

연산
어명이야. 받들어.

성희안
전국의 유생들과 초야의 원로대신들의 상소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연산
지금 나 협박하는 거요?

연산, 중신들을 노려본다.
중신들 머리를 조아리고 바닥만 쳐다본다.
연산 획 나가버린다.
중신들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조판서 성희안, 유독 표정이 굳어진다.


 궁 옥화당-밤

연산(off-sound)
윗 입을 채워주랴, 아랫 입을 채워주랴?
(하다가)
다시 해봐.

녹수 물구나무를 서려다 자꾸 넘어진다.
연산, 녹수의 다리를 잡으며 도와준다.

연산
잘 좀 해보라니까.

녹수 겨우 거꾸로 선다.

녹수
자, 윗 입 대령이요.

연산과 녹수 재밌어 신나게 웃다 함께 쓰러진다.

녹수
아까 내 흉내 낸 그 광대 말이야.
어찌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그 놈 얼굴에
구멍 안 낫나 몰라.

연산
구멍?

하더니 녹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잡아 쓰러뜨린다.
녹수 간드러지게 웃으며 연산의 품에 안긴다.


 궁 내관원-밤

김처선이 탁자에 나란히 마주 앉은 장생을 찬찬히 보고 있다.

장생
(언성을 높이며)
아니, 그런 법이 어딨어요?

김처선
어디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느냐?

장생, 얼굴이 상기된다.

장생
왕이 궁에서 살라고 했는데,
지들이 뭐라고 나가라 마라예요?
귀향 안 보내요? 귀향.
어명 어기면 귀향 보내는 거 아니예요?

김처선
임금이 행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보필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
중신들이 천박하고 재주도 미천한 네 놈들을 궁에 두고 볼 줄 알았더냐?

장생, 더욱 상기된다.

장생
끌고 들어올 때는 언제고,
제 발로 나가라고?
못 나가.
우리 목숨하고 바꾼 거야.

김처선
(가소롭다는 듯이)
마마가 한번 웃은 걸 가지고,
성은이라도 입은 듯 오만방자 하구나.

장생, 김처선의 말을 못들은 척 단호한 표정이다.

장생
(불쑥)
전국의 재주 있는 광대들을 모으게 해주세요.

김처선, 호기심어린 눈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장생
그럼 우리 비록 천하지만
재주는 미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어요.

김처선
(차갑게 웃으며)
중신들하고 한번 해 보겠다?

김처선, 위압적인 눈빛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장생, 기죽지 않고 마주 본다.


 희락원 내실-밤

공길과 장생은 한 구석에서 조용히 종이에 뭔가를 쓰느라 골몰하고 있다.

육갑
(다가와)
뭐 하는 거유?

장생
판을 크게 벌릴 거야.
광대들을 모아야 돼.

육갑 칠득 팔복, 뭔 소린가 하고 서로 쳐다본다.

육갑
뭔 소리야?

장생
중신들이 왕한테 우릴 당장 쫓아내라고 했데.

칠득
(반색을 하며)
잘됐네. 그럼 얼른 내빼자고.

장생
제 발로는 나가도 쫓겨서는 안나가.

육갑, 나서서 뭔 말인가 하려 하는데 팔복이 육갑의 옆구리를 툭 친다.

육갑
놔 봐.

하고 돌아보는데 어느새 아름다운 궁녀 두 명이 간식을 담은 쟁반을 들고 마루 앞에 서있다.
육갑, 아름다운 궁녀들의 모습을 보고 혹한다.

육갑
(칠득에게)
칠득아, 니가 좀 경솔한 거 같다.

궁녀들 음식을 마루 끝에 올려놓고 사라진다.
육갑 칠득 팔복, 궁녀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공길은 묵묵히 적던 종이를 들고, 일어나 벽에 붙인다.
광대들을 모으기 위한 (언문으로 적은) 방이다.
육갑 칠득 팔복, 바라본다.

공길
똑같이 써.

장생 종이와 붓을 육갑 칠득 팔복에게 나눠준다.

장생
도성 안에부터 광대들이 지날 만한 곳에
죄다 붙이자구.

육갑 칠득 팔복, 붓을 받으며 쭈삣 대는 모양이 아무래도 언문을 모르는 눈치다.
머뭇거리다 종이에 머리들을 쳐 박고 뭔가 열심히 끄적인다.
서로 남이 쓰는 걸 넘겨다 보려하며,
남이 보려하면 안보여 주려고 몸을 틀어 종이를 감춘다.

(jump)

장생, 방을 하나 완성해 공길이 써 붙인 방 옆에 나란히 붙인다.

장생
다 썼어?

하고 칠득과 팔복이 적은 종이를 들어 본다.
육갑은 얼른 자기가 쓴 종이를 뒤로 숨긴다.
칠득과 팔복 나름대로 언문을 따라 그렸는데 도무지 뭔 글자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장생 어이없어 한다.
육갑 나란히 붙은 공길과 장생의 방을 번갈아 본다. 글씨체가 꼭 같다.

육갑
(신기해하며)
어찌, 두 사람 필체가 한 배서 난 쌍둥이 마냥 똑같소?

장생
내가 공길이가 쓰는 언문을 흉내 내 쓰며
배워 그렇지.

칠득과 팔복도 신기해한다.

육갑
하여간 남 흉내 내는 건 타고 났어요.

장생
자.

하며 육갑에게 육갑이 쓴 방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육갑 망설이다 종이를 내민다.
모두 모여 육갑이 쓴 종이를 보다 까무러치게 웃는다.
육갑, 글을 모르니 그림만으로 희락원 광대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설명했는데 절묘하게 그럴 듯하다.

육갑
언문 읽을 줄 아는 광대가 어딨수?
다 내 생각이 있어서.

모두 웃음을 뚝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


 희락원 마당-낮

궁 후원 구석 어느 터에 큰 천막이 쳐진다.
노역 인부들 분주히 오가며 희락원을 세우고 있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신이 난 표정으로 노역 인부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한다.


 저자거리(어느 곳)-낮

사람들이 모여 희락원 광대 모집 방을 본다.
언문으로 쓰인 방과 그림으로 그린 방이 나란히 붙어 있다.
사람들, 그림으로 설명한 방 앞에만 모여 있다.
그림 속 희락원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다.


 희락원 입구-낮
 
육갑의 그림처럼 희락원 앞에 광대 지망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모두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앞뒤 사람과 수군거린다.


 희락원 마당-낮

희락원 광대 오디션.
종목별로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하나같이 머리며 복장이 단정하게 변해있다.

육갑, 상 앞에 앉아 살판(땅재주)꾼들의 심사를 보고 있다.
광대들 차례로 나와 다양한 아크로바틱을 선보인다.
육갑, 재주에 따라 감탄하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하며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갈라 세운다.

칠득과 팔복, 나란히 앉아 버나(접시돌리기)꾼들을 심사한다.
광대들 차례로 나와 제각각 버나를 선보인다.
어떤 광대(구만) 유난히 큰 접시를 돌리다 성에 안 차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성큼 걸어오더니 칠득 앞에 놓인 상을 집어 들고 돌려버린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 감탄한다.

공길, 덜미(인형극)꾼들을 심사한다.
갖가지 인형을 준비한 광대들, 준비한 인형극을 선보인다.

장생, 소극 광대들을 심사한다.
동물 소리 등 온갖 소리를 똑 같이 성대모사하는 광대.
되지도 않는 썰렁한 사물 흉내 개그를 선보이는 광대.
무술과 재담을 결합해 선보이는 광대.
브레이크 댄스 같은 춤을 추며 마치 랩 같은 만담을 하는 광대.
장타령(각설이 타령)을 신명나게 부르는 거렁뱅이. 등등...

공길과 장생, 뛰어난 재주를 가진 광대들을 발견할 때마다 뿌듯하고 자신감 있는 미소를 교환한다.


 궁 후원 연못-밤

횃불이 궁 후원 연못가를 밝히고 있다.
연산 활을 들고 있다. 연못을 향해 화살을 쏜다.
연못 속의 잉어에 정확히 꽂힌다.

연산
광대들은 잘 놀고 있느냐?

김처선
예.

연산
우리도 슬슬 놀아 봐야지?

김처선, 머리를 깊게 조아리며 어명을 받든다.


 희락원 마당-낮

희락원 광대로 선발된 광대들의 연습이 한창이다.
희락원 여기 저기 무리 지어 외줄타기, 버나, 살판, 덜미 등을 연습한다.
김처선 들어선다.
공길과 장생, 김처선을 발견하고 달려 오려하는데
김처선이 손을 들어 저지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한다.

김처선 희락원 안을 걷는다.

외줄타기를 연습하는 광대들을 지나,
살판을 연습하는 광대들을 지나,
버나를 연습하는 광대들을 지나,
인형극에 쓰일 인형을 만드는 광대들을 지나,
아무 말 없이 걷는다.
연습을 하던 모든 광대들, 김처선이 지날 때면
김처선을 의식하며 눈에 들기 위해 고난이도 묘기를 선보인다.
그렇게 오버하다 실수하기도 한다.
 
희락원 한쪽,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이 각각 몇 명의 광대들을 데리고 소극을 짜는 곳에 이른다.

칠득
(중신 자제 역,
다리사이에 조그만 목마를 끼고)
아버지, 나 성균관 안가!

육갑
(중신 역,
다리 사이에 좀 큰 목마를 끼고 있다)
왜?

칠득
이게 뭐야, 체면이 있지.
다른 애들은 다 외국에서 들여 온 말 타는데.
(칠득의 목마에 눈독을 들이며)
안장도 가죽도 아니고.
기생집에 가면 말잽이 들이 고삐도 안 잡아 준다구.

육갑
이 놈아, 그럼 이 얘비가 입궁 하는데
그걸 타고 가리?
내 체면은 어쩌고?

칠득
(목마를 내팽겨 치며)
나 성균관 안가!

장생, 소극 연습에 집중하느라 김처선을 의식하지 못한다.

육갑
(딴에 만족스럽게 장생을 보며)
형님, 재밌지?

장생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 모여봐.

이 모습을 바라보던 김처선, 공길과 눈이 마주친다.
공길, 마치 무안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다.
광대들이 우르르 장생을 둘러싸고 모인다.
뒤에 남았던 공길, 김처선에게 예를 표하고 광대들 쪽으로 간다.


 궁 연회장-낮

겹겹이 늘어선 사물잽이 들의 땅을 흔드는 장단.
희락원 광대들, 희락원에서 연습하던 갖가지 재주들을 완성도 있게 선보인다.

연산과 녹수, 연신 웃으며 뭐라 대화하는 모습이 즐거운 모양이다.
중신들, 못마땅하면서도 광대들의 신기한 재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jump)
 
희락원 광대들의 소극이 한창이다.

장생
대감, 접니다.

칠득
누구시더라.

장생
좋은 자리가 하나 났다던데, 받으시죠.

칠득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라의 기강이.

장생
약소합니다. 황금거북입니다.

칠득
거참 안 된다지 않습니까.

장생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칠득
어허!

장생
정말 안 됩니까?

칠득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장생
정말입니까? 정말 도저히 안 됩니까?

칠득
어허,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됩니다.

장생
정말 안 된다 이 말이죠. 좋습니다.
그럼 내 돌아갈 여비가 없어 그런데,
닷 냥에 팔 테니 좀 사주십시오.

칠득
(화를 내며)
아 이 사람이!
그렇다면 두 마리 삽시다.

광대들 한데 어울려 신명나게 춤을 춘다.
공길, 여장을 하고 나타난다.
연산, 공길이 나타나자 몸을 앞으로 숙이며 관심을 보인다.

공길
(봉투를 들이밀며)
제 남편 좀!

장생
이러시면 다치십니다.

공길
(떨어진 봉투를 다시 들이밀며)
제 정성입니다. 받아주세요.

장생
(봉투 안을 확인하고)
어허, 이러시면 다친데두.

공길
(봉투를 호주머니에 들이밀며)
제발 한 번만 받아주세요.

장생
(손을 뿌리친다)
나를 어찌 보고 이러시오.

공길, 봉투를 호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바지춤 속으로 손이 들어간다.

장생
어허.

공길
역시 소문대로 위세가 대단하십니다.

장생
(흥분해서 몸을 비비꼬며)
좀 살살. 아! 어찌 이다지도 귀한 선물을.

공길
내 손이 좀 합니다.

연산, 공길의 연기에 폭소를 터뜨리며 반응한다.
녹수도 자지러지게 웃는다.
공길 장생 육갑 칠득 팔복, 즐거워하는 연산의 웃음에 희열에 찬 표정이다.
중신들은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뭔가 불안한 표정이다.
형조판서 윤지상, 눈에 띄게 중신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안색이 안 좋아진다.
연산 갑자기 연회장 중앙으로 뛰어든다.

연산
(왕관을 벗어 장생에게 내밀며)
받아 주십시오.

중신들 경악한다.
광대들도 굳는다.

장생
(멈칫하다)
어디 보자.
에이, 난 이런 요상하게 생긴 거 필요 없소.
(손으로 여자 몸을 그리며)
이런 거면 또 모를까.

연산 고개를 갸우뚱하며 장생의 손짓을 따라하더니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주변을 둘러보다 상위에 놓인 호리병 모양의 술병을 들고 가서는,

연산
대령했습니다. 여기.

장생
어허. 이 사람.
답답하긴. 잘 보게.
(또 다시 손으로 여자 몸을 그리며)
요거!

연산
아, 예.

하고는 자리로 달려가 녹수의 손을 잡아챈다.
녹수 재밌어 웃으며 따라 간다.
공길, 장생과 연산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연산
대령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녹수의 몸을 따라 손을 놀리며)
요거!

장생
그렇지!

신명나는 장단 울리고 광대들 어울려 춤을 춘다.
연산도 함께 춤을 춘다.
중신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연산, 춤을 추며 중신들 앞으로 다가선다.

연산
(중신들 앞에서 춤을 추며)
왜들 안 웃어?

연산, 중신들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중신들에게 권한 후 술을 직접 따라준다.

연산
자자, 쭉~ 마시고 즐겨 보라고.
국사는 잠시 잊고 즐겨 보란 말이야.

연산, 나란히 앉은 중신들에게 차례로 술을 따라준다.
중신들, 당황해 주춤거리며 선뜻 마시지 못한다.
연산, 윤지상에게 술을 따른다.
술잔을 든 윤지상의 손 심하게 떨린다.

연산
분위기가 왜 이래?
(짐짓 머리를 굴리는 듯하다)
오라. 찔리는 게 있는 거야.
(중신들을 둘러보며)
그렇지?

연산, 손을 휘저어 장단을 정리한다.
연회장 전체에 긴장이 흐른다.

연산
누구냐?
(중신1을 지목하며)
너냐?
너희 집에서 기생들의 가야금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는데.

중신1
(말을 끊으며 간곡하게)
전하. 아니옵니다.

연산
그럼,
(중신2를 지목하며)
너냐?
지난번에 평양 감사로 갈 적에 이끌고 간
식솔만 백 명이 넘었다며?
그 돈 다 어디서 난 거야? 너지?

중신2, 입도 못 벌리고 사색이 되어 고개를 가로젓는다.

연산
(윤지상을 지목하며)
너지?

윤지상, 손을 떨며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리고 당황하며 고개를 젓는다.

연산
이놈이. 임금이 하사한 술을.

윤지상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전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이 놈이 없이 자란 탓에 가난이 한이 되어 그만.

연산, 발로 형조판서 윤지상을 사정없이 걷어찬다.

윤지상
죽을죄를 졌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연산
이 쥐새끼 같은 놈.
니 놈이 벼슬 장사를 해?
니 놈한테 벼슬 줄 때 한 푼 안 받은 난 뭐야?
돈 내놔라, 이 쥐새끼 같은 놈. 어서!!

하며 정신없이 발로 차 뭉갠다.
형조판서 윤지상, 나뒹군다.

연산
여봐라. 형조판서 윤지상을 파직시키고,
전 재산을 몰수하여 국고에 편입하라.

연산, 가려다 몸을 돌려 선다.

연산
그리고 죄 많은 윤지상의 손가락을 잘라
모든 조정 대신들이 본보기로 돌려 보라.

광대들, 박살나는 윤지상과 겁먹고 있는 중신들을 보고 긴장해 있다.
연산, 뭔가 생각난 듯 곁에선 김처선에게 뭐라 이른다.
김처선, 연산의 말을 듣는 동안 공길을 계속 바라본다.
다른 광대들은 김처선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고 공길만 김처선의 시선을 느낀다.
장생, 공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김처선을 발견하고 김처선과 공길을 번갈아 본다.


 희락원 내실-밤

육갑, 칠득, 팔복, 들어온다.
장생, 무겁고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와 육갑패를 지나쳐간다.
육갑, 무거운 분위기가 맘에 안 드는지 씨익 웃다가 표정을 바꾼다.

육갑
(갑자기 팔복을 획 돌아보며)
너지?

팔복, 뭔 소린지 모르고 어리둥절하다.

육갑
(이번엔 칠득에게)
그럼 너냐?

칠득
(육갑의 뜻을 알았는지)
잘못했습니다.
이 놈이 없이 자란 탓에 가난이 한이 되어 그만.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육갑
(칠득을 패는 시늉을 하며)
이 쥐새끼 같은 놈. 니가 궁중 광대 자리 장사를 해?
니 놈한테 공짜로 궁중 광대 자리 내준 난 뭐냐?
내 돈 내놔라. 이놈아.

팔복, 배를 잡고 웃는다.

육갑
여봐라.
이 놈의 거시기를 잘라 궁녀들이 돌려 보게 하라.

하다 웃어 재낀다. 칠득도 따라 웃는다.

칠득
이제 중신놈들 찍소리도 못하겠지?

팔복
당연하지.

육갑
그나저나 왕 말이야,
광대로 났으면 제대로 한 가닥 했겠든데.
노는 게 보통이 아니네.

칠득
그러게 말이야.
그동안 좀이 쑤셔서 어찌 살았을까?

장생, 육갑 칠득 팔복이 신이 나서 떠드는 방구석에 앉아 내내 뭔가 생각에 잠긴 듯 골몰하다.

육갑
(그제야 생각난 듯)
근데 공길이는 왜 불려 간 거지?
(기대감어린 말투로)
금송아지라도 받아 오는 거 아닐까?

장생, 문 쪽을 바라본다.


 궁 연산 처소 앞-밤

공길, 김처선 앞에 경직된 모습으로 서있다.

김처선
(공길의 머리와 옷매무새를 만져주며)
용안을 보아서는 안 된다.

공길, 고개를 더 깊이 숙인다.

김처선
뭐든 물어서도 안 된다.
상감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는 ‘아뢰옵기 황공하오나’하고
혹여 상감이 칭찬을 내리시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하고 아뢰거라.

공길, 김처선의 말이 끝나자 어깨 사이로 고개를 더 깊이 묻는다.


 궁 연산 처소-밤

공길, 머리를 깊숙이 묻고 굳은 듯이 서있다.
연산, 고개를 좌우로 조금씩 움직여 가며 공길을 유심히 살펴본다.
딱딱하던 표정이 호기심에 찬 아이 같은 표정으로 이내 다시 밝은 표정으로 바뀐다.

연산
놀자.

공길
(한참 머뭇거리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예?

연산
계속 놀잔 말이다.

공길
아뢰옵기 망극하오나...

연산, 잔뜩 긴장하고 있는 공길이 귀엽다.

연산
형판 그 놈 때문에 한창 놀다 판이 깨지지 않았느냐?
너랑 나랑 둘이서 계속 놀잔 말이다.

공길, 품에서 손 인형 두개를 꺼내 쪼물락 거리며 양손에 낀다.
연산,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공길, 고개를 살짝 들어 방안을 살핀다.
연산의 뒤에 쳐진 병풍을 바라본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병풍 쪽으로 가더니 뒤로 숨는다.
연산, 공길의 일거수일투족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병풍 위로 두개의 손 인형이 나온다.
무섭게 생긴 인형, 작고 연약해 보이는 인형을 위협한다.

공길
(무서운 목소리)
감히 왕을 능멸하는 소극을 해?!
(약한 목소리)
왕 앞에서 하게 해줘요.
왕이 웃으면 능멸한 게 아니잖아요.
(무서운 목소리)
안 웃으면?!

작은 인형 겁에 질려 부르르 떨다 아래로 사라진다.
무서운 인형도 사라진다.

인형들 다시 올라온다.
공길 손을 뒤집어 다른 인형이 되었다.
공길(a)과 장생(b)이 연상되는 두 남자 인형.

공길
(a)미쳤어?
니가 왕이면 그걸 보고 웃겠어?
(b)어차피 살판 아니면 죽을판이야.
죽기 살기로 해보자, 응?
(a)그래 해보자.
(a, b)얼쑤!

두 인형 신명나게 춤을 춘다.
연산, 소리는 내지 않고 즐겁게 미소 짓는다.
어느새 다가와 병풍을 한쪽으로 접어 거둔다.
공길, 긴장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연산, 공길에게 손을 내민다.
공길 인형을 달라는 뜻 인줄 알아채고 인형을 내민다.
연산, 인형을 양손에 낀다. 잠시 공길을 바라본다.

연산, 손에 끼워 진 인형을 잠깐 바라본다.
갑가지 “하하하”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두개의 남자 인형을 신나게 들썩거린다.
연산의 웃는 모습에 공길도 밝은 표정이 된다.

연산
(공길이 했던 인형극을 흉내 내며)
왕이 웃었다.
왕도 별거 아니네.
별 거 아니야.

연산, 뭐가 그리 웃긴지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인형을 사이에 두고 그런 연산을 웃으며 바라보던 공길, 연산의 웃음이 계속되자 표정이 굳어진다.
연산, 그런 공길을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공길을 바라본다.
공길, 연산의 시선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
연산, 공길을 바라본다. 한동안. 뚫어지게.


 궁 연산 처소 앞-밤

공길 문을 열고 나온다.
김처선 고개를 숙이고 연산의 방문을 지키고 있다.
공길, 김처선을 바라본다.
김처선, 공길의 시선을 의식하고 고개를 든다.
공길과 김처선, 한동안 서로 바라본다.
공길, 뭔가 묻고 싶은 눈빛이다.
김처선, 말하지 말라는 눈빛이다.


 희락원 마당-밤

장생 육갑 칠득 팔복이 모닥불 주변에 둘러 앉아 있다.
육갑, 장작 안에서 감자를 하나 꺼내 호호 불다가 장생에게 건넨다.
장생, 관심 없는 듯 고개를 돌린다.
육갑, 의아하게 생각하며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그 때 저 만치서 공길이 다가온다.

육갑
(일어나 공길을 반기며)
왕이 왜 부른 거야?

공길, 아무 말 없이 장생 맞은 편 불가에 앉는다.

육갑
(공길에게 달라붙어 앉으며)
왕이 뭐래? 뭐했어?

공길
인형극.

육갑
인형극?
어떻게 했는데?
왕이 좋아해?
한번 해봐. 응.

장생, 무관심한척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
공길, 품에서 인형을 꺼내 양손에 낀다.
육갑 칠득 팔복 호기심어린 눈으로 인형들을 바라본다.
공길, <인형a>와 <인형b>로 왕을 웃겨 살아 난 후 광대들이 나눴던 얘기들을 재현한다.

공길
a)형님, 이제 우리 빼도 박도 못하고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요?
b)(신이 나서) 그럼, 왕하고 신나게 놀아 보자고.
a)왕을 못 웃기면 죽이는데도?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어?
b)(신이 나서) 왕이라고 대수냐?
놀기 위해 살지, 살기 위해 노냐?
자, 놀아보자고.
놀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얼쑤.

육갑 칠득 팔복, 공길의 인형극에 웃는다.
장생, 자신을 재밌고 흥겹게 묘사하는 인형극에 빙긋이 웃으며 인형 사이의 공길 얼굴을 바라본다.


 궁 옥화당-밤

녹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신음을 (하는 시늉을)한다.
녹수의 치마가 불룩하게 불러 있다.
녹수, 짧은 비명과 함께 치마 자락을 들치고 뭔가 큰 것을 꺼낸다.
녹수의 손에 연산이 딸려 나온다.

녹수
(연산의 사타구니를 만져보고)
아들이다!

연산, 진짜 애라도 된 듯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러다 녹수의 가슴을 탐한다.

녹수
(애를 어르듯)
그래, 그래. 배고프지?
젖 먹자. 우리 애기.

녹수, 옷고름을 풀려는데 연산이 먼저 거칠게 녹수의 옷을 벗긴다.
그러다 갑자기 손을 탁 멈춘다.

녹수
(여전히 아이를 어르는 시늉으로)
왜? 젖 싫어?

연산, 녹수의 맨가슴에 얼굴을 묻고 딴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멍해있다.
녹수,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표정으로 연산을 내려다본다.

녹수
젖 싫으면 술 줄까?

연산, 녹수의 품에서 나와 녹수의 얼굴에 손을 대고 이리저리 만져보다 툭 밀친다.

녹수
어라? 오늘 애기가 이상하네.

녹수, 멍하니 연산을 바라본다.


 궁 어전-낮

연산, 두 줄로 나란히 앉아 있는 중신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연산
윤지상의 손가락은 다들 돌려봤소?

중신들 한결같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연산
진짜 돌려들 본 건 아니지?

성희안
(간곡하게)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죄를 지은 신하를 벌하심은 지당하오나
벌할 때도 법도에 따른 절차가 있는 법이온데.

연산
(능청스럽게)
이 성질이 화요.
그 놈이 이실직고를 하는데 어찌나 열불이 나던지.
그나저나 윤지상 그 놈은 뇌물을 받을 때 법도에 따라 절차를 지켜 받아 처먹었나 몰라.

성희안
(더욱 간곡하게)
전하!

연산
알았어, 알았다니까.
내 다음부터는 그대들을 벌할 일이 있으면 꼭 법도에 따라 벌할 것을 약속하오.

중신들, 연산의 조롱 섞인 말에 불편한 표정을 억지로 추스른다.

성희안
전하. 관직을 팔아 치부를 한 윤지상의 죄는 마땅히 다스릴 일이나 천한 광대들이 조정의 대신관료들을 능멸하는 처사는 자칫 국기를 흔들 수도 있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연산
그 놈들이 뭘 알고 했겠소?

성희안
(결연하게)
전하. 당장 희락원을 폐하고 광대들을 엄히 다스리는 것이 지당하다 사료되옵니다.

연산
그냥 나를 웃기자고 한 짓을 가지고 너무 예민한 거 아니요?

성희안
전하께서 고작 광대패들의 놀음에 놀아나신다면
어느 누가 전하를 나라의 지아비로 섬겨 모시겠나이까?

중신들 성희안의 직언에 모두 긴장한다.
연산, 성희안을 노려본다.

연산
들어라.
당장 저 놈의 관직을 박탈하라.

이극균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조판서 성희안은 선왕을 모셨던 원로 공신으로 비록 실언을 했다하나...

연산
(이극균을 노려보며)
선왕?
선왕은 하늘같이 떠받들고 나한테는 이래도 되는 거요?

성희안
전하.
선왕은 만백성이 지아비로 섬기기에 모자람이 없는
성군이셨사옵니다.
전하께서 지금처럼 향락에 몰두하여 민생을 외면하시면서
정녕 하늘이 되기를 바라신단 말입니다.

연산
(싸늘하게)
여봐라.
저놈을 지금 당장 궁에서 내쳐라.
그리고 궁 근처 십리 안에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려라.

별감들 들어와 성희안을 끌어낸다.
성희안 당당하게 끌려 나간다.
연산, 끌려 나가는 성희안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머리 숙인 이극균을 노려본다.
그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궁 어전 복도-낮

연산, 튕겨 나오듯 어전에서 나온다.
거칠게 팔을 휘두르며 복도를 걸어간다.
김처선, 종종 걸음으로 쫓는다.

연산
왕을 뭘로 아는 거야?
입만 열면 선왕. 무덤까지 따라들 가지.
내 어미를 궁에서 내쫓았어.
그게 성군이야?
내쫓아 죽여 버렸어.
그게 그렇게 대단한 성군이 할 짓이라 이거지.

연산, 복도가 갈리는 곳에 다다른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처럼 양쪽을 번갈아 본다.
한쪽으로 갈 듯 하더니 급히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빠져나간다.


 궁 어전 앞-낮

별감들 양쪽에서 성희안의 양팔을 끼고 어전 앞 계단을 내려온다.
도총관 박원종 달려온다.
별감들, 박원종에게 예를 표한다.

박원종
물러가라.
내가 모시겠다.

별감들, 박원종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라진다.

박원종
(안타깝게)
대감.

성희안
대감은 무슨.
이제 이조판서는 내 자리가 아니네.

성희안, 가려다 돌아서서 회한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어전을 돌아본다.

성희안
주인이 바뀌어야 할 자리는 또 있어.

박원종
가시지요. 대감.

하고 앞장선다.
성희안, 어전에서 눈길을 거두고 따라간다.


 희락원 마당-낮

광대들, 연습이 한창이다.
희락원 문이 열린다.
연산이 나타난다.
연산의 굳었던 얼굴이 펴진다. 마치 놀이동산에 들어선 아이 같은 표정이다.
장생, 희락원까지 왕림한 연산을 보고 감격스러운 얼굴로 반색한다.
연산, 성큼성큼 들어온다.
내관들이 쪼르르 뒤를 따른다.
광대들 왕림한 연산을 발견하고 일제히 하던 짓을 멈추고 주저앉아 머리를 조아린다.
김처선, 장생에게 손짓으로 광대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하게 지시한다.
장생, 광대들에게 손짓으로 지시한 후 연산에게 다가가 연산을 수행한다.
광대들 장생의 지시를 알아차리고 다소 어색하게 하던 연습들을 계속한다.  

연산, 광대들 사이를 누비며 광대들의 연습을 따라한다.
장생, 밝은 얼굴로 연산이 해보는 동작들을 거들고 요령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연산의 용포가 날린다.
버나(접시돌리기)를 해보고,
옆으로 자리를 옮겨 외줄 타기를 연습하는 낮은 외줄 위를 뒤뚱거리며 걷고,
땅재주를 연습하는 광대들을 보다 되지도 않는 재주를 넘는다.

연산이 쓰러지고 자빠질 때마다 내관들이 기겁을 하고 달려들어 연산을 일으켜 세운다.
겁먹고 당황하던 광대들 차츰 연산과 어울린다.
장생, 연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연산, 마냥 즐거운지 한참을 논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멈춰 선다.

연산
공길이!
(희락원 안을 둘러보며)
공길이는 어디 있느냐?

공길, 덜미(인형극) 공연을 연습하는 소형 무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연산의 부름에 당황한다.
망설이다 삐죽 얼굴을 내민다.
연산, 공길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다.
장생, 공길과 연산을 번갈아 보다 공길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연산의 모습을 의아해한다.


 궁 연산 처소-밤

병풍 뒤에서 두개의 남자 인형이 올라온다.
공길, 인형을 바라본다.
병풍 뒤에서 연산의 목소리가 들린다.

연산(off-sound)
(어린 목소리로)
아바마마, 어미가 그립습니다.
(무섭고 엄한 목소리로)
어미는 생각하지도, 입 밖에 내지도 말라 하지
않았느냐!
(가여운 목소리로)
아바마마, 한번만이라도 어미를...
(엄한 목소리로)
심약한 놈!
니가 그러고도 만 백성의 지아비가 될 수 있겠느냐?

작은 인형, 움츠러들다 큰 인형과 함께 병풍 밑으로 사라진다.
공길 슬픈 눈으로 사라지는 인형을 바라본다.

인형들, 다시 올라온다.
작은 인형 한 쪽으로 가려한다.

연산(off-sound)
아니 되옵니다.

작은 인형, 반대편으로 돌아 움직인다.

연산(off-sound)
아니 되옵니다.
 
작은 인형, 병풍 밑으로 내려 가려한다.

연산(off-sound)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하는 연산의 소리 점점 더 단호하고 차갑다.
작은 인형이 조금만 움직이려하면 큰 인형이 연신 “아니 되옵니다”를 외쳐댄다.
작은 인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공길 안타까운 눈으로 작은 인형을 바라본다.


 궁 옥화당-밤

녹수의 잔뜩 부은 얼굴이 면경에 비친다.
홍내관 헐레벌떡 들어온다.

녹수
왜 아직 안 납시느냐? 왜?
대체 밤마다 뭘 하신단 말이냐?

홍내관
희락원 광대 공길을 불러 함께 계시옵니다.

녹수
그년과 무얼 하고 있더냐?

홍내관
놈입니다요.

녹수
(짜증스럽게)
하는 짓이 계집 같아 헷갈려 죽겠어.
하여간!

홍내관
그게... 그러니까.

녹수
어서 말하지 못할까?

홍내관, 양손을 올려 쪼물락 거린다.
홍내관의 움직이는 손이 창호문에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녹수
(홍내관의 손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놀이?

홍내관, 녹수에게 다가가 귀에 입을 댄다.
잠시잠깐 녹수의 냄새를 음미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녹수, 고개를 돌려 홍내관을 노려본다.
홍내관, 얼른 시침을 떼며 뭐라 귀엣말을 한다.
홍내관의 말을 듣는 녹수의 눈이 반짝거린다.


 희락원 마당-밤

엄청나게 큰 원판이 돌아간다.
희락원 광대 구만이 돌리고 있다.

육갑 칠득 팔복,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육갑
너 쟤 왜 뽑았어?
아주 정신 사나워 죽겠어.
그만 좀 돌리라 그래.

구만
(어느새 장생 앞까지 다가와 계속 돌리며)
연회에서 한판 돌리게 해줘요.
이거 먹힌다니까요.

육갑
저리 안가?!
눈 돌아 죽겠어, 이 놈아!

구만 돌리면서 사라진다.

육갑
왕 또 안 오나?

칠득
다시 봐도 천상 광대든데.

육갑
내가 보니까 땅재주는 영 아니고,
하면 외줄타기를 좀 하겠든데.
(장생을 보며)
또 오면 형님이 제대로 한번 가르쳐 주쇼.

장생, 굳은 표정으로 육갑과 칠득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다가 불쑥 일어나 나간다.

칠득
근데 공길이 형님은 왜 데려 간거야?
다음번에 조질 중신 고르나?

장생, 나가다 입구 근처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고 희락원 밖으로 사라진다.


 희락원 마당-밤

장생, 술에 취해 줄 위에 걸터앉아 있다.
달이 휘영청 밝다.
공길, 다가와 줄밑에 선다.

장생
왕의 방은 어떻게 생겼어?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공길, 대답 없이 장생을 올려다보다가 경사진 줄을 올라 줄 끝에 선다.
괜히 발을 굴러 줄을 흔든다.
줄 가운데 앉은 장생의 몸이 출렁인다.
장생, 고개를 돌려 공길을 본다.
공길, 계속 발로 줄을 구르며 장난치는 아이처럼 웃는다.

장생, 표정 없는 얼굴로 달을 올려 본다.
공길, 구르던 발을 멈추고 장생의 시선을 쫓아 달을 본다.

장생
궁에서 보는 달은 또 다르네.
달에도 광대가 살까?
공길아.

공길
(대답 없이 뜸을 들이다)
취했어. 들어가자.

장생,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공길이 줄을 타고 쪼르르 내려간다.
공길, 희락원 입구 쪽으로 간다.

장생
공길아.

공길, 돌아본다.

장생
내 말 잘 들어.
(잠시 뜸을 들이다)
니가 싫은 건 하지 마.

장생, 술 취한 눈으로 공길을 본다.
공길, 그런 장생을 본다.


 궁 내관원-밤

내시1, 장생을 데리고 들어온다.
김처선 눈짓으로 내시1을 물린다.
내시1 나간다.
김처선, 장생에게 자기 앞의 의자에 앉으라고 눈짓한다.
김처선, 왠지 삐딱한 장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뒤에서 금빛 표지로 된 서책을 내놓는다. 

김처선
언문 읽을 줄 아느냐?

장생
(금빛 서책을 힐끔 보고)
뭡니까?

김처선
중국 황실에서 전해져 오는 얘기다.
이걸로 소극을 꾸며 해라.

장생, 서책을 받아 든다.

장생
왕이 그러랍니까?

김처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장생
어디...
(하며 책장을 넘긴다)
후궁들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얘기네.
(서책을 보며)
재밌겠는데요.
(서책을 계속 보며 혼잣말처럼)
이번에도 왕이 판에 끼어 노실라나?
후궁자리 하나 남겨 둘까요?
(하며 김처선을 올려다본다)

김처선, 무서운 얼굴로 장생을 노려본다.
장생, 서책을 들고 일어서 나간다.

장생
(나가려다가 능청스럽게)
세상은 왕 맘이지만,
놀이판은 내 맘이니 한번 해본 소리예요.

장생, 한번 씨익 웃더니 사라진다.
김처선, 사라지는 장생의 뒷모습 바라본다.


 희락원 마당-밤

육갑 칠득 팔복 내시2를 앞에 두고 내시 특유의 동작을 흉내 내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칠득
형님, 내시들 그냥 걸을 때랑 오줌 마려울 때랑
어떻게 다른지 알아요?
봐요.

칠득 우스꽝스러운 걸음으로 몇 걸음 간다.
모두 웃는다.

장생 서책을 들고 들어온다.
육갑, 장생을 보고 달려가 잡아끈다.

육갑
(반색을 하며)
빨리 와봐.
(장생을 주저앉힌다)
들어봐, 들어봐.
(내시2에게)
다시 한번 말 해줘요.

칠득
이거야, 이거.
다음 연회 땐 내관들 흉내 냅시다.
해봐요, 빨리.

내시2, 쭈뼛거리며 안 한다.

육갑
내가 하께. 내가.
불알 뗄 때 어떻게 떼는 지 알아?

장생
(일어나며)
공길이는?

육갑
공길이는 안에 있고,
들어 보라니까.

장생
다 들어와.

하고 내실 쪽으로 서둘러 간다.
육갑 칠득 팔복, 장생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육갑
불알 떼는 거 아나 본데.


 희락원 내실-밤

공길 앉아있다.
장생 서책을 들고 들어와 바닥에 내려놓고 앉는다.

장생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김처선 나으리가 줬어.

공길, 별로 안 궁금한지 장생이 내민 서책을 바라만 본다.

장생
안 봐?

공길, 그제야 건네받아 책장을 넘긴다.
표지가 넘어가자 중국 경극 분장을 한 남자와,
그 남자를 사이에 두고 서있는 두 여자의 모습(칼라)이 나온다.

장생
(공길의 반응을 살피다)
어때?
재밌겠지?

육갑 칠득 팔복도 머리를 박고 보느라 정신이 없다.

육갑
(책을 보다 고개를 들고)
왕 말이야,
놀 얘기까지 직접 정하는 거 보면
이번에도 또 끼어들어 함께 놀 작정인가?

칠득
재미 들렸나봐.
놀이판에서도 왕 노릇 하려 드는 건 아니겠지?

장생
누구 맘대로?
세상은 왕 맘이지만, 놀이판에선 아냐.

공길, 단호한 장생을 바라본다.


 희락원 마당-낮

광대들을 소극 연습을 하려하고 있다.

육갑
이번엔 판이 더 크다며?

칠득
뭔, 날이래요?

육갑
거 뭐냐, 왕의 외할머니가 온데.

팔복
왕도 외할머니 있어요?

육갑
(잠시 생각하다 팔복을 쥐어박으며)
그럼 너한테도 있는 외할머니가,
왕이라고 없겠냐?
외할머니뿐 아니라 친할머니에다가 거 뭐냐,
선왕의 마누라들은 죄다 와서 본데요.

장생이 나타난다.
육갑 칠득 팔복, 뒤로 물러나 자리를 잡고 다른 광대들 빙 둘러서 원을 만들어 앉는다.

(jump)

소극 연습이 진행되고 있다.

육갑
(약사발을 받쳐 들고 여자 걸음으로 달려온다)
사약 대령이요.

칠득
(약을 찍어 먹어본 후)
음~ 그래. 진하군.
당장 황후에게 달려가 이 사약을 먹여라.

육갑
예이~
(하고 공길에게 달려간다)
사약이요.
식기 전에 드쇼.

장생
그만.

육갑
왜? 재밌는데.

장생
이거 아냐.
이건 그냥 깝치는 거야.

장생, 공길을 쳐다본다.
공길, 고개를 끄덕이며 장생의 말에 수긍한다.


 궁 연회장-밤

희락원 광대들의 공연이 막 시작된다.
연산과 녹수 그리고 중신들, 앉아 있다.
연산, 옆에 앉은 자신의 외할머니 손을 다정하게 잡고 있다.
그 옆으로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도 앉아 있다.
챙챙챙챙~ 하고 경극 특유의 음악이 울린다.
땅재주를 하는 광대들이 큰 깃발을 날리며 화려한 아크로바틱으로 연산 앞을 휘젓고 사라지자,
어느새 경극 배우 분장과 복장을 한 칠득 팔복이 연산 앞에 나타난다.
어설픈 경극 분장과 차림으로 여장을 한 칠득과 팔복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다시 경극 분위기의 음악이 울린다.

칠득
(경극 톤으로)
오~늘 밤~엔 만~나려나.
꿈~에나 보는 홍~등.

팔복
오~늘밤이 삼~백일째.
독~수공~방 외~롭구나.

그 때 한 광대가 홍등이 달린 긴 대나무 막대를 들고 등장해 연회장을 누빈다.
칠득과 팔복, 이를 보고 환장을 해 홍등을 쫓아 지그재그로 달린다.
겨우 홍등을 잡았나 싶었는데, 휙- 빠져나가더니 저만치로 가서 멈춘다.
그 밑에 화려한 여장을 한 공길이 서있다.

칠득과 팔복, 홍등을 향해 얼른 달려간다.
홍등, 칠득과 팔복을 희롱하듯 이리 저리 움직인다.
칠득과 팔복, 홍등을 쫓아 쪼르르 달려 다닌다.
그때 왕 차림을 한 육갑이 나타나 공길 옆에 서자, 홍등이 공길의 머리 위에서 멈춘다.
칠득과 팔복, 육갑에게 갖은 섹스어필을 한다.
육갑, 잠깐 바라보는 듯 하다 고개를 돌린다.
칠득과 팔복, 실망해 고개를 숙인다.
육갑, 다정하게 공길을 데리고 홍등과 함께 저만치 자리를 옮긴다.
연산, 홍등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공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칠득
오~늘 밤도 공 쳤구나.

팔복
송~곳이나 꺼내시오.

칠득
얼마~나 찔~렀는지 송~곳 끝이 무~디구나.

다시 챙챙챙챙~ 하는 경극 음악.
황태후 역의 장생 나타난다.
홍등 밑에선 공길에게 눈을 흘기고 칠득과 팔복 쪽으로 온다.

칠득
태~후 마마. 억~울하오.

장생
못~난 년들.

칠득/팔복
(칠득과 팔복, 장생에게 달라붙어)
소~근 소~근, 쑥~덕 쑥~덕.

장생
말~을 해라. 이년들아.

칠득과 팔복,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장생에게 귀엣말을 한다.
장생의 눈이 반짝인다.
장생, 칠득과 팔복을 뒤에 달고 공길과 육갑 쪽으로 걸어간다.
공길과 육갑, 다가오는 장생을 보고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들처럼 잡았던 손을 놓는다.
장생, 양손을 벌리고 사뭇 인자한 표정으로 육갑을 바라본다.
육갑,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장생의 품에 안긴다.
장생, 아이를 다루듯 육갑을 품에 안고 다독거리며 공길 쪽을 못 보게 한다.
칠득과 팔복, 육갑의 눈을 피해 공길을 이지매 한다.
육갑, 잠깐 돌아본다.
칠득과 팔복, 육갑이 보는 걸 의식하고 얼른 자신들이 공길에게 맞기라도 한 것처럼 나뒹군다.
장생, 다시 육갑의 고개를 잡아 품에 묻는다.
칠득과 팔복 또 다시 공길을 이지매한다.
장생, 육갑을 놓는다. 육갑이 돌아보면 칠득과 팔복 다시 자기들이 당한 것처럼 나뒹군다.
장생, 뭔가를 사주하는 눈빛으로 육갑을 노려본다.
한 광대가 사약 사발을 들고 달려 와 육갑에게 건네고 사라진다.
장생, 뒤에서 육갑을 안고 육갑의 팔을 잡아 사발을 들게 한다.
그대로 움직여 공길의 앞에 사발을 내밀게 한다.

육갑
(주저하며)
아니 되오. 아니 되오.
어찌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약을 내리라 하십니까.

장생
(말리는 육갑 너머로 공길에게 헛발질을 하며)
요망하고 요망한 년.
여시 같은 네년이 내 아들을 홀렸구나.

장생, 인형을 조종하듯 육갑을 뒤에서 안고 사약을 내밀게 한다.
칠득과 팔복, 기쁨을 감춘다.
공길, 억울함이 가득한 눈길로 장생과 육갑을 본다. 억울함이 원망으로 바뀐다.
공길,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가지런히 땅에 깔고 사발을 받아 내려놓는다.

공길
황제의 사랑이 크고 크지만 그 사랑을 원하는
이 또한 많구나.
황제가 내게 친히 보약을 내리시니 내 어찌
받지 않으리오.
아들아!
다행히 목숨을 보전하거든...

연산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공길을 바라보고 있다.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 어느새 사색이 되어 연산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중신들 어느새 모두 얼굴이 굳어져 당황하고 있다.

공길
나를 황제가 거동 하는 길옆에 묻어 황제의
행차를 보게해다오. 아들아~

공길 사발을 들어 마신다.
중신들 사색이 되어 연산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연산 젖은 눈으로 쓰러진 공길을 바라본다.
연산의 외할머니, 입술을 앙다물고 외면하며 슬픔을 참는다.
공길, 깔아 놓은 겉 옷 위로 쓰러지려한다.
연산 어느새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와 쓰러져가는 공길을 안는다.
공길, 쓰러지다 연산의 손길에 순간적으로 놀란다.
공길과 모든 광대들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다.
연산, 공길을 안고 “어머니, 어머니...”하며 오열한다.
녹수, 연산의 모습을 예의 주시한다.
공길 숨죽이며 연산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연산, 공길을 품에 꼭 안고 공길을 느끼려는 듯 미동도 없다.
장생, 공길과 연산의 모습을 보고 놀라다가 조금씩 표정이 경직되더니 어느새 완전히 굳어버린다.

부들부들 떨며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이 자리를 피하기 위해 일어난다.
연산이 이들의 모습을 본다.

연산
(눈에 광기가 서려)
서시오.

인수대비와 엄귀인 정귀인, 깜짝 놀라 멈춘다.
연산, 한걸음에 달려가 정귀인과 엄귀인의 머리채를 한데 잡고 연회장 가운데로 끌고 온다.
연산의 뒤에 내시들과 나인들 어쩔 줄 몰라 하며 뒤따른다.

김처선
전하, 고정하십시오.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연산 아랑곳 않고 곁에 섰던 의금부 도사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어든다.
인수대비, 경악하고 달려 나와 막아선다.

인수대비
이, 무... 무슨 일이냐?

연산
이년들이 내 어미를 죽인 년들이오.
보고도 모르오?

인수대비
이 무슨 해괴한 일이요.
선왕의 여인들을...

연산
이년들이 모함을 하여 내 어미가 궁에서 내쳐지고,
사약을 받고 피를 토하며 죽었단 말이오.

인수대비
그게 무슨 말이오.
폐비 윤씨는 그 품행이 방자하고...

연산
입 다무시오.
내 어미를 두 번 죽일 셈이오.
잘 보시오.

연산 칼을 휘둘러 정귀인을 벤다.

인수대비
(연산의 팔에 매달리며)
무슨 짓이오.

연산
놔!

인수대비, 몸부림치는 연산의 머리에 받쳐 나가떨어진다.
연산 칼을 휘둘러 엄귀인을 죽인다.
땅에 넘어진 인수대비도 숨을 거둔다.

연산
들어라.
저 년들이 혀를 놀려 할마마마를 충동질했으니
당장 정가와 엄가 두 년의 혀를 뽑아라. 그리고
이 년들은 상을 치르지 못하게 하고
향후 그 성씨를 부르지 말게 할 것이며 이들의
부모 형제를 모두 잡아 장형 백 대씩을 때려 귀향 보내고
그 재산을 모두 몰수하라.

연산의 절규가 연회장을 가득 메운다.
모든 중신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광대들도 믿기지 않는지 고개를 숙이고 떨고 있다.
공길, 연산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장생은 연산의 살육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공길만을 굳은 표정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다.


 희락원 마당-밤

육갑 칠득 팔복, 막 공연을 끝낸 분장 그대로 들어온다.
장생, 걸어오며 공길을 노려본다.
공길, 불편한 듯 장생의 눈길을 피한다.

육갑
(옷을 벗어 내려놓으며)
이게 뭔 일이야?
소극을 할 때마다 누가 작살이 나니 살
떨려서 하겠어, 어디?

칠득
희락원 세운 게 그냥 웃자고 한 일이 아닌가 봐.

장생 묵묵히 듣고 있다.

육갑
형님은 알았수?

장생
...

칠득
(공길을 보며 추궁하듯)
형님은 알았지?
왕이 따로 언질이라도 줬던 거 아냐?

장생, 묵묵히 분장을 지우고 있는 공길을 바라본다.

공길
...

육갑
우리가 살판나게 놀고 나면 죽을 판이 벌어지니.
궁이란 데가 원래 이런거유?

공길, 분장을 지우다 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장생, 공길을 바라보다 갑자기 일어나 공길의 손을 잡아 채 내실로 끌고 들어간다.


 희락원 내실-밤

공길, 장생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온다.
장생, 거칠게 문을 닫는다.

공길
(장생의 손을 뿌리치며)
놔, 나도 몰랐어.

장생
(다짜고짜)
나가는 거야.

공길, 장생의 말을 못들은 척 외면한다.

장생
못 봤어? 왕은 미쳤어.

공길
아니야.

장생
(안 믿기는 듯)
뭐?

공길
(잠시 망설이다)
미친 게 아니라구.

장생
지 아버지의 여인들을 죽였어.
지 할머니까지 죽였는데 그게 제정신이야?

공길
(간곡하게)
장생아, 아니야.
미쳐서 그런 게 아니야.
난 알아.

장생
(말없이 공길을 노려보다)
알아? 뭘?
어떻게 알았는데?
뭘 알았는데?

장생, 말없이 공길을 노려본다.


 궁 춘추관-밤

이극균과 성준, 굳은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다.

이극균
이대로 당할 순 없습니다.

성준
그럼?

이극균
광대놀음을 그치게 해야지요.
광대 몇 놈 죽이면 그만입니다.

성준
모르시오? 왕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소.

이극균
왕이 아는 것과 세상이 아는 것은 다릅니다.

성준
그게 무슨 소리요?

이극균
제아무리 왕이지만 세상이 알기 전에는 저흴
어쩌지 못합니다.
광대들을 없애면 됩니다.

성준
왕이 희락원 광대들을 저리 총애를 하고 있는데...
난 빠지겠소.
좌상은 금부당상으로 윤씨에게 내리는 사약을 전했지만,
나는...

이극균
(말을 끊으며 차갑게)
영상 대감은 당시 우승지였소.
선왕이 윤씨를 내치고 사약을 내릴 때 아니된다 한마디
간하지 못한 걸 세상이 알아도 괜찮다?

성준, 겁먹는 표정이 된다.
이극균의 눈빛이 결연하다.


 궁 종묘-낮

연산과 중신들 모두 상복을 입고 있다.

연산
(약한 모습으로)
내 흥분을 가누지 못해 대왕대비마마와 선왕의 여인들을
죽였으니 이 어쩌면 좋소?

중신들 아무 말 않고 머리만 조아리고 있다.

연산
좀 나서서 말리지들 않고 뭣들 했소?
내 법도를 어겨도 이만 저만 어긴 게 아니니,
큰일 아니오.

도승지
전하~ 자식이 어미의 한을 풀어드리는데 어찌
법도를 논하겠사옵니까?

연산
내 맘을 알아주니 고맙소.
(성준에게)
영의정은 당시 관직이 뭐였소?

성준
(담담하게)
소신은 당시... 우승지였습니다.

연산
그래요?
그 당시 중신들의 반대가 대단 했겠소?

성준 이극균, 별로 흔들림 없는 모습이다.

연산
왕이 여인간의 질투에 놀아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하셨으니 중신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있었겠소?
안 그렇소?

성준
(의연하게)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 일은 여인들 간에
워낙 은밀히 벌어진 일이라 신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사옵니다.

연산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 숙인 중신들을 바라보다)
소극으로 어마마마의 한을 풀어 준 공길이란 광대에게
큰 상을 내려 치하하는 게 마땅하다 생각되는데.

도승지
지당하시옵니다.
전답을 합쳐 열 마지기와 베 오백필...

연산
아니, 아니.
그 정도로 돼나?
벼슬을 내립시다!

중신들(일제히)
전하~

연산
(중신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종사품 어떻소?
아니 되오?

중신들, 서로 눈치만 보며 침묵한다.
연산, 흡족한 듯 여린 미소를 띄운다.

연산
여봐라!
광대 공길에게 종사품 벼슬을 내려라!
그리고 크게 연회를 열어...

이극균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은 대왕대비 마마의
국상을 치르는 중이오라 연회가 불가하옵니다.

중신들, 나서는 이극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연산
내 정신 좀 봐.
깜빡 했소.
그래도 예로부터 임금이 새로 높은 벼슬을 내리면
함께 모여 인재가 중용된 기쁨을 나누는 법인데.  
 
이극균
정히 그러하시다면 사냥을 열어...

이극균, 성준과 눈빛을 교환한다.

연산
사냥? 사냥은 안 된다 하지 않았소.

이극균
궁 후원에서...

연산
후원? 그래, 그 방법이 있었네.
아버지처럼.
근데 사슴 몇 마리 풀어놓고 재미가 있을까?
 
김처선, 이극균과 연산을 번갈아 본다.


 궁 연산 처소-밤

연산 비단 도포를 들고 있다.
그 앞에 공길이 서있다.
연산, 공길에게 도포를 입혀주려 한다.

연산
(잠시 표정이 굳었다 풀며)
안다.
이 정도로 너무 약소하지.
자.

공길, 반사적으로 움찔하고 살짝 피한다.
공길을 바라보던 연산의 눈빛이 무섭게 변해간다.

연산
(무겁게)
니가 나에게 준 거에 비하면 하찮지.
받아.

공길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는 마마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사옵니다.

연산
무슨 소리.
어서 받어.

공길
정히 그러하시다면 이 놈이 아니라
장생에게...

연산
장생?

연산, 불쾌한 눈으로 잠시 공길을 빤히 쳐다본다.
공길, 연산의 불쾌한 심기를 알아채고 승명패를 받아 든다.
연산, 공길에게 도포를 걸쳐준다.
앞으로 돌아와 관대를 채워주고 머리에 관을 씌워준다.
연산, 공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공길,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연산을 바라본다.

연산
자, 돌아봐라.

공길, 잠시 머뭇거리다 한바퀴 돈다.
연산, 흐뭇하게 바라본다.


 궁 옥화당-밤

녹수,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홍내관을 바라본다.

녹수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있다가)
에잇!
그 많은 후궁들을 다 물리치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 년이?!

홍내관
놈이라니까요.

녹수, 홍내관을 무섭게 노려본다.

홍내관
(얼른 눈을 피하며 혼잣말처럼)
기생만도 못한 천한 광대에게 종사품을 내리시다니.
세상이 어찌되려고.
(하며 혀를 차다보니 녹수가 기생출신이다)

녹수
이 놈이...!
없이 산다고 가여워해줬더니.
죽고 싶냐?

홍내관, 고양이 앞의 쥐처럼 움츠러든다.

녹수
(혼잣말로)
알아내야 해.

홍내관
네?

녹수
(혼잣말로)
그 놈이 한 짓거리를 알아내.
무슨 짓으로 임금의 마음을 뺏었는지 알아내란 말이야.

홍내관
(난감해 하며)
그걸 어찌...

녹수
알아내!

홍내관
(얼른)
네.

녹수의 표정이 굳어진다.


 희락원 내실-밤

육갑 칠득 팔복, 짐승들의 가죽을 뒤집어 써보고 있다.
장생은 한구석에서 거푸 술병을 들이키고 있다.

칠득
형님, 종사품이 높아요, 정사품이 높아요?

육갑
...둘 다 허벌나게 높아.

팔복
궁에는 같이 들어와서,
누구는 천출도 못 면했는데 하늘같은
종사품이라니.

칠득
근데 벼슬을 받으면 장생 형님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육갑
(장생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해, 이놈아.

칠득
(알아채고 얼른 말을 돌리며)
그나저나, 이게 뭔 짓이야. 대체.

팔복
사냥을 할 거면 숲에 나가 할 것이지 왜
광대들을 데리고 난리냐구.

육갑
공길 형님한테 벼슬 내린 걸 축하하는 사냥은 해야겠고
국상을 치르는 중이라 백성들 눈이 무섭고 하니 후원에서 사냥 시늉만 한다잖아.
죽는시늉들이나 잘 해.
봐, 응?

육갑 까불며 동물처럼 죽는 시늉을 한다.
그 때 공길이 벼슬아치들이 입는 도포를 입고 들어온다.

칠득
어, 종사품 나으리!

육갑
(달려들어 도포를 만지며)
비단이야, 비단.
죽인다!

장생, 공길을 쳐다본다. 공길 앞으로 다가선다.

장생
(도포를 만지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종사품?

공길, 불편한지 장생의 눈길을 피한다.

장생
좋~아하네.

공길
내일 사냥터에서 놀아야 하니까
그만 자자.

장생
(공길의 도포자락을 잡아 돌려세우며)
이래서 못 나간다고 하셨구만.

육갑 칠득 팔복, 공길을 대하는 장생을 보고 당황한다.
공길, 도포를 잡은 장생의 팔을 슬며시 뿌리친다.

공길
자게 자리 펴자.

공길, 이부자리 쪽으로 가는데 장생이 다시 잡아 돌려 세운다.

장생
지체 높으신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서
주무시면 되나.
왕이 별궁은 안 내줬나 보지?
궁녀가 성은을 입으면 별궁을 내주는...

공길
(차마 듣지 못하고)
이러지마!

육갑 칠득 팔복, 어색한 분위기에 서둘러 방을 나간다.

공길
장생아, 제발 이러지마.

장생
집어 쳐!
차라리 양반한테 몸이나 팔게 놔두는 거였어.

공길, 장생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굳는다.

공길
(차갑게)
난 구해달라고 한 적 없어.

장생, 분노와 절망이 섞인 표정으로 공길을 바라보다 들고 있던 술병을 내던지고 나간다.
공길, 장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멍하게 서있다.


 궁 후원(1)-낮

연산과 중신들, 말에 올라 있다.
공길도 말에 올라 연산 옆에 있다.
동물 모습의 광대들 재미난 듯 장난치고 있다.
장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나졸들 몇, 품에 잔뜩 화살을 안고 와 말에 오른 연산과 중신들에게 화살을 나눠준다.
화살촉 대신 솜방망이가 달린 화살이다.
화살을 나눠주던 나졸1, 이극균의 말 앞에 다가온다.
긴장한 눈빛으로 이극균을 바라보다 화살 더미 속에서 따로 정해놓은 화살을 골라내 건넨다.
이극균, 결연하게 받아든다.
그 중 한 화살의 끝 솜뭉치를 뚫고 삐죽 나온 화살촉이 보인다.

징소리 울린다.

동물 분장을 한 광대들 숲을 향해 달려 나간다.
연산, 이극균과 성준을 보고 씨익 웃더니 “이랴~”하고 말을 몬다.
이극균과 성준, 마주보다 발을 들어 말의 옆구리를 찬다.
도총관 박원종도 말을 달린다.


 궁 후원(2)-낮

육갑 칠득 팔복, 나무 뒤에 모여 있다.
각자 자신들이 분한 동물 모습을 흉내 내며 애들처럼 놀고 있다.

저만치 앞에 중신3이 말을 타고 나타난다.

칠득
형님, 왔어요.
사냥꾼 왔어요.

육갑
어디 활 솜씨 좀 볼까?

육갑 까불며 나서 보란 듯 땅재주를 넘는다.
모두 재밌어 웃는다.
중신3, 천천히 활을 당겨 화살을 쏜다.
화살이 날아와 육갑의 가슴에 정통으로 맞는다.
육갑, 자신의 가슴에 맞고 떨어진 화살을 본다.
솜방망이 화살이다.
육갑, 뒤돌아 칠득과 팔복에게 보란 듯 웃어주곤 장난스럽게 죽는시늉을 하다 벌떡 일어난다.

그 사이 이극균과 성준이 저 만치 와 있다.
육갑 일어나 다시 재주를 피운다.
이극균, 화살을 쏜다.
아슬아슬하게 육갑의 곁을 비켜 간다.
그런데 육갑의 바로 뒤 나무에 팍 꽂혀 부르르 떨린다.
진짜 화살이다!
육갑 칠득 팔복, 장난이 아닌 걸 알고 뜨악하고 넋을 잃는다.
이극균과 성준, 또 다시 활을 겨눈다.
육갑 칠득 팔복, 황급히 도망간다.


 궁 후원(3)-낮

육갑 칠득 팔복, 나무 사이로 도망간다.
이극균과 성준 말을 달려 쫓는다.
육갑 칠득 팔복, 공길을 발견하고 달려간다.

육갑
뭐 하는 거야. 지금?

공길
왜 그래?

육갑
화살이 진짜야.

공길
뭐야?

공길 급하게 말을 달린다.

육갑
어디 가?

이극균과 성준, 육갑 일행을 쫓아오다가 공길을 보더니 그리로 향한다.


 궁 후원(4)-낮

공길 말을 달린다.
멈춰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저 만치 연산의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말을 몬다.
공길, 이극균과 성준이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다.
급히 말을 달려 다른 쪽으로 달아난다.
장생, 높은 나무 위에서 쫓기는 공길을 보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공길 쪽으로 내달린다.
공길, 도망가다 외지고 막다른 곳에 몰린다.

이극균, 공길의 눈을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긴다.
공길 피할 길 없어 공포감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이극균이 화살을 놓으려는 순간 호랑이(탈을 쓴 육갑이)가 공길 앞으로 날아들어 대신 맞는다.
육갑 활을 맞고 쓰러져 피를 흘린다.
칠득과 팔복, 육갑을 안고 상태를 살핀다.
이극균, 다시 공길에게 활을 겨눈다.
장생, 나무 사이에서 달려 나와 육갑을 안는다.

육갑
(활이 박혀 피가 나오는 가슴을 내려다보며)
형님, 나 또 육갑한 거야?
이거 아니잖아.

하고는 장생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이극균, 공길을 겨누던 활 끝을 조금 움직인다.
어느새 공길 뒤에 모습을 나타낸 연산을 겨누고 있다.
이극균, 활을 쏜다. 연산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거의 연산에 닿으려는 순간, 곁에 섰던 김처선이 활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낸다.
순식간에 연산의 말을 둘러싸 막는 무장한 내시들.
연산, 말 위에서 이극균을 향해 활을 쏜다.
이극균을 향해 날아간 화살 이극균의 어깻죽지에 꽂힌다.
연산, 말에서 내린다.
이극균, 휘청하는 사이 성준이 연산을 겨눈다.
연산, 성준에게 활을 쏜다.
성준의 가슴팍에 꽂힌다.
연산, 이극균과 성준에게 다가간다.

연산
네놈들이 광대들을 사냥해 죽인 걸 보면 오늘 사냥이
필시 흉내는 아닌 모양이지.
호랑이에게 물렸으니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다.

이극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연산
너는 선왕이 어마마마께 사약을 내릴 때 그 사약을
받쳐 들고 나간 금부당상 이었다.
왕이 부당한 처사로 국모를 죽이려 할 때 간하여
말리지 않고 오히려 방조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연산 또 화살을 쏜다.

이극균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중신들이 피를
흘렸는지 아느냐?
그런데 천한 광대들을 불러들여 그런 중신들을...

연산 또 화살을 쏜다.
이극균
내 일찍이 무오년에 니가 사림 대신들을 죽여
조정을 피로 물들었을 때 너의 광폭함을 알았으나...

연산, 활시위를 부르르 떨다 마지막 화살을 쏜다. 
이극균, 왼쪽 가슴에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지켜보던 공길과 칠득과 팔복, 경악하고 성준은 공포에 질려 벌벌 떤다.
연산 이번엔 성준에게 활을 겨눈다.

연산
내 진짜 호랑이에게 네 놈을 던져 물어뜯게 해도
성에 차지 않으나 신성한 동물의 입을 너 같은 놈의
피로 더럽힐 수 없어...

활을 쏜다.
성준, 머리에 활을 맞고 피를 흘리며 죽는다.
박원종 이 모습을 바라보며 무거운 표정이 된다.
공길, 완전히 넋이 나가 죽은 육갑을 바라본다.
장생 오열하다 공길을 쳐다본다.


 희락원 마당-낮

팔복이 멍석에 말은 육갑의 시체를 지게에 지고 나온다.
희락원 광대들 뒤를 따라 나온다.
장생 맨 뒤에 나온다.
모두 슬픈 표정이다.
칠득, 자꾸만 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앞으로 툭 나선다.
육갑 특유의 걸음을 흉내 내며 육갑의 시체를 진 팔복을 빙빙 돈다.
광대들 칠득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 순간 모두 칠득의 걸음을 흉내 내며 원을 그린다.
손에 든 악기들로 장단까지 쳐댄다.
무겁고 슬프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흥겹게 변한다.

공길이 다가온다.
광대들 분노가 섞인 눈길로 공길을 노려본다.
공길, 육갑의 시체에 손을 대려한다.
장생, 공길을 밀친다.
공길 다시 다가 선다.
장생, 공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공길, 쓰러진다.
광대들, 쓰러져 있는 공길의 얼굴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길, 바닥에 쓰러진 채 멀어져 가는 장생과 육갑의 시체를 바라본다. 


 성희안의 집 정원-낮

비가 내린다.
성희안이 처마 밑에서 왔다 갔다 한다.
말이 달려 와 멈춰서는 소리 들린다.
노비가 쪼르르 달려와 뭐라 이른다.
박원종이 들어온다.

박원종
대감! 영의정, 좌의정이 죽었습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성희안
영의정, 좌의정도 자리를 비웠군.
마지막 자리를 비울 차례가 됐어.

성희안, 말없이 고개를 들어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궁 욕실-밤

나무 욕조 속에 담긴 물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 옆에 김처선과 나인 두세 명 수발을 들고 있다.
김처선 왠지 뭔가 걱정하는 표정이다. 참다못해 욕조로 다가가 들여다본다.
연산,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나온다.
김처선 안도하며 뒤로 다시 물러난다.
연산, 몸을 쓸어 닦다가 멈추더니 지긋이 배꼽을 바라본다.

연산
목욕을 해도 해도 말이야,
배꼽의 때는 왜 안 없어지지?

김처선
이제 더 이상 피를 보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연산, 아무 말 없이 다시 물속으로 잠긴다.


 궁 연산 처소-밤

연산(off-sound)
이놈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연산, 공길의 손에 억지로 활을 쥐어 주고 물러난다.
김처선이 술상을 든 궁녀들을 이끌고 들어오다 황당한 표정으로 연산을 바라본다.
궁녀들도 겁먹은 표정으로 긴장한다.

연산
(어서 쏘라고 활 쏘는 시늉을 해대며)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중신들이 피를
흘렸는지 아느냐?

공길,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김처선과 궁녀들 상을 놓고 나가려고 하는데,

연산
나가지마.
니들도 함께 놀자.

연산, 공길이 활을 쏘지 않자 자기가 화살을 잡아 자기 배에 꽂으며 죽는 시늉을 한다.
그때 녹수가 문을 열고 들어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녹수
놀고 있네, 놀고 있어.

연산
이 년도 쏴라.
이년이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년이다.
어서 쏴.

연산, 화살을 녹수의 배에 꽂는다.
녹수 신경질적으로 연산의 손을 뿌리친다.
연산, 흥이 깨진다.

녹수
(공길에게)
이 놈!
감히 상감에게 이 무슨 짓이냐?!

연산
조용히 해!

녹수, 곤란해 하는 공길을 바라보다 다가간다. 

녹수
(공길의 뺨을 만지며)
어머! 피부가 참 곱구나!
(연산에게)
당신도 만져 봤수?
얼마나 예뻐?
곱기도 곱고, 소극으로 눈엣가시인 놈들 죽일
빌미까지 만들어 주니.

하고는 나가려다 돌아서서,

녹수
저 놈 본래 기집이 아닐까?
소리면 소리, 몸짓이면 몸짓,
그거 없는 내관들도 저렇지는 않은데.
보고 싶지 않아? 벗겨보자.
(공길에게)
뭘 망설여?
남자 대장부라면 시원하게 벗어봐.

연산
그만해.

녹수
(연산의 말을 무시하며)
부끄러워?
그럼 우리 같이 벗고 놀까?
(하며 자기 저고리를 풀어 벗고
공길의 옷을 벗기려 한다)

공길, 녹수의 손을 잡고 못 벗기게 하며 구원을 청하듯 연산을 바라본다.
연산, 화난 눈으로 녹수를 노려본다.
공길, 녹수의 손을 뿌리치고 피하다 발이 걸려 연산 앞에 쓰러진다.

녹수
(집요하게 다시 옷을 벗기려하며)
가만있어봐.

연산
(얼음처럼 차갑게)
손대지 마.

녹수, 고개를 획 돌려 연산을 노려보다 더 거칠게 공길의 옷을 벗기려 한다.
연산, 광폭하게 녹수의 머리채를 끌고 문 쪽으로 끌고 가서 문을 연다.
김처선과 궁녀들, 황급히 빠져 나간다.
연산, 녹수를 문밖으로 내친다.
연산 문을 쾅! 닫는다.

연산,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잠시 문 쪽을 보고 섰다가 돌아선다.
돌아 서 있는 공길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려 한다.

공길
(연산의 손길이 닿자 격하게 몸을 빼며)
놔요, 이거.

연산, 사뭇 놀란다.

연산
(달래듯)
공길아.

공길
날 내버려 둬요. 제발.
 
공길, 도포를 벗어 내려놓는다.

연산
(힘없이)
공길아.
왜 그래?
사냥에서 죽은 광대 때문에?

공길
...

연산
광대는 또 뽑으면 돼.

공길
난 그냥 광대짓만 하고 살고 싶었어요.
그냥 그게 다예요. 그런데...

연산
(공길의 말을 자르며)
그래. 넌 그러면 돼.
내가 그렇게 해 줬잖아.
공길아, 놀자.
다 잊고 놀자.
아니, 놀면서 다 잊자.
그래, 인형.

연산, 공길에게 달려들 듯 다가와 인형을 찾기 위해 공길의 몸을 뒤진다.
공길, 연산을 밀친다.
연산, 뒤로 나자빠진다. 분노에 찬 표정으로 공길을 바라본다.
공길, 연산을 외면한다.
연산, 공길을 한동안 바라보다 뭔가를 조르는 아이 같은 표정이 된다.

연산
공길아, 놀자.
큰 연회를 열까?
그래, 널 위한 연회를 열자.

공길, 연산을 돌아보다 무릎이 꺾이며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공길
놔주세요.
절 놔주세요.
돌아갈래요.

연산
어디로?

연산, 처연한 눈빛으로 공길을 바라본다.
공길, 피하지 않고 연산을 본다.

연산
안돼. 이제 니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

연산, 공길 앞에 무릎을 꿇으며 무너진다.
공길, 슬픈 눈으로 고개 숙인 연산을 바라본다.

문 밖, 김처선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궁 옥화당-밤

녹수, 연산에게 내쳐진 그 모습 그대로 앉아 있다.
근육에 경련이 일 정도로 살기가 오른 얼굴에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다.

홍내관(off-sound)
숙용마마.

녹수
잠깐!

녹수, 얼른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면경을 당겨 얼굴을 매만진다.
금세 아무 일 없었던 듯 보인다.

녹수
들거라.

홍내관, 들어와 녹수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홍내관
다음에 다시?

녹수
뭐냐?

홍내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언문이 적힌 종이를 내민다.

녹수
(귀찮은 듯이)
읽어봐.

홍내관
(곤란한 표정으로)
이것 참... (하며 입맛을 좀 다시는데)

녹수, 냉큼 종이를 빼앗아 든다.
잠시 읽던 녹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녹수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
녹수는 한낮 기생이었던 기집이 왕의 눈에 들어 궁에
들어간 후 온갖 방중술로 구미호 같이 왕을 홀려
국사를 어지럽히고...
또한 상감이란 자는 향락에 눈이 멀어,
궁에는 기생이 넘쳐나고 근자에는 천하기 이를 데 없는
광대들까지 곁에 두어 날마다 천박한 소극을 즐기니...

홍내관
매일 밤이 지나고 나면 도성이 그런 비방서로
도배가 된답니다.

녹수
어떤 놈 짓이냐?

홍내관
마마도 참,
그걸 알면 가만있겠습니까?
진작 잡아들여 죽였지요.

녹수
(잠시 생각하다 뭔가 떠오른 듯)
공길이 놈이 언문을 알까?

홍내관, ‘뭔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녹수를 본다.


 어느 방(모필꾼)-밤

벽에 다양한 필체의 언문으로 쓴 종이들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홍내관 품에서 엽전 꾸러미를 꺼내 모필꾼 앞으로 던져 준다.
모필꾼 엽전 꾸러미를 보고 씨익 웃는다.
홍내관 품에서 말려있는 두장의 종이를 꺼낸다. 비방서와 공길이 쓴 언문 방이다.
모필꾼 두장의 종이를 펴 나란히 놓고 본다.


 궁 어전-낮

중신들 얼굴이 무겁게 굳어 있다.
도승지가 상소로 보이는 종이 뭉치들을 잔뜩 받쳐 들고 있다.

연산
내가 상소 가져오지 말랬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도승지
(간곡하게)
전하... 어찌 언로를 막으라 하십니까?

연산
누가 언로를 막어?
(곁에 놓인 비방서 중 하나를 들어 읽는다)
상감이란 자는 향락에 눈이 멀어,
궁에는 기생이 넘쳐나고...
(다른 비방서를 들어 읽는다)
근자에는 천하기 이를 데 없는 광대들까지 곁에
두어 날마다 천박한 소극을 즐기니... 봐라.
내가 백성들의 옳은 말을 이렇게 직접 귀담아 듣고
있질 않느냐.

도승지
전하.

연산
(얼른 도승지의 말을 끊으며)
그러니 이제 홍문관과 사간원 같은 건
필요 없겠지?
안 그래?
이제 이렇게 내가 백성들의 말을 직접 들을
언로가 트였으니 말이다.

도승지
(간곡하게)
전하.

연산
(또 말을 끊으며 단호하게)
홍문관과 사간원을 없애라.

도승지
(애절하게)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연산
(또 말을 끊으며)
그리고 상소를 제일 많이 올리는 성균관,
성균관도 없애.

중신들, 연산의 폭정에 찍소리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처선, 그런 모습을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때, 어전의 문이 열리며 녹수가 들어온다. 손에 종이 두 장을 들고 있다.
연산, 의외다.

연산
(엄하게)
어전 회의 중이다.

녹수, 손에 들고 온 종이를 연산에게 내 보인다.
연산, 녹수가 건네는 비방서를 받아들고 읽는다.

연산
(조금 읽다가)
백성들의 비방서 쓰는 솜씨가 날로 나아지고 있구나.

녹수
잡았어.

연산
?

녹수
비방서 쓴 놈 말이야.

녹수, 또 한 장의 종이를 내민다.
공길이 광대들을 모으기 위해 쓴 방이다.
연산, 공길의 방을 받아 들고 무슨 의미인지 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녹수, 턱으로 연산이 들고 있는 비방서를 가리킨다.
연산, 양손의 종이를 들어 번갈아 본다. 글씨체가 똑같다.
연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당혹한 표정으로 이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뀐다.


 희락원 마당-낮

칠득과 팔복, 우울하게 앉아 있다.
장생도 그 곁에 있다.

팔복
육갑이 형님 좋은 데로 갔을까?

칠득
...

팔복
천당에선 심심해서 못 살 양반인데.

칠득
(장생에게)
형님 나갑시다.

장생
...

칠득
소문 못 들었어요?
궁 밖에 왕을 비방하는 비방서가 떠돈데.

팔복
왕 만 비방하는 게 아니래요?
백성들 간 빼먹는 임금을 웃기느라 옘병을 한다고
우리까지 싸잡아서...

공길 들어온다.
칠득과 팔복, 곱지 않은 시선으로 공길을 꼬나보다 일어나 사라진다.
장생, 공길을 바라보다 와락 달려들어 희락원 입구 쪽으로 끌고 간다.
공길, 버텨 보지만 힘으로 안 되고 질질 끌려간다.
끌려가다 곁에 있는 공연용 칼을 집어 든다.
장생, 칼을 보고 놀라 멈칫한다.

공길
못 나가.

장생
왕은 미친놈이야.
다 아는데 왜 너 만 못 보는 거야.

공길
왕은 미치지 않았어.
제발 이러지마.
넌 몰라.

장생
알아.
왕이 우리를 끌어 들인 거야.
중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자기 놀자고 우릴 죽일 거야.
너도 죽을 거야.

공길
누구든 나가기 전에 내 손에 먼저 죽어.

장생과 육갑 칠득 팔복, 모두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장생
미쳤구나.
(칼 앞에 다가서며)
그래, 날 죽여라.

장생, 감정을 가누지 못하는 눈으로 장생을 보다 공길의 칼을 빼앗아 든다.
주변의 기물들을 거칠게 걷어차 버린다.
흥분해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외줄타기 연습을 하는 낮은 외줄을 끊으려 한다.

공길
그만해.

하고 달려들어 장생을 말린다.
장생, 공길을 밀치고 외줄을 끊어 버린다.

그 때 연산, 녹수, 김처선, 홍내관, 의금부 도사, 나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의금부 도사와 나졸들, 다짜고짜 달려가더니 공길을 끌어다 연산 앞에 무릎 꿇린다.
의금부 나졸들 장생과 칠득 팔복 등을 무섭게 제압하며 모두 꿇어앉힌다.
공길 영문도 모른 채 겁먹고 연산을 올려다본다.
장생, 그 광경을 보고 놀란다.
칠득과 팔복도 놀라 바라본다.
연산, 무섭게 공길을 노려본다.
의금부 나졸들, 공길 앞에 지필묵을 내려놓는다.

연산
(공길에게)
적어라.

공길 영문을 몰라 하다 붓을 들어 먹을 적신다.
녹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연산
(비방서를 펼쳐들고 읽는다)
상감이란 자는 향락에 눈이 멀어...

공길
(차마 쓰지 못하고)
마마, 왜 그러십니까?

연산
적어라!
상감이란 자는...

공길 마지못해 적는다.

연산
향락에 눈이 멀어,
왕의 소임을 져버리고 직언을 하는 충신은...

공길
(몇 자 더 적다 차마 못 적고)
마마...!

연산, 공길이가 막 적은 비방서와 들고 온 비방서를 대조해 같은 글씨체를 확인한다.
손에 쥐었던 비방서를 힘없이 놓치고 돌아선다.
공길, 땅에 떨어진 두 장의 비방서가 모두 자신의 글씨체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장생도 옆에서 보고 놀란다.

녹수
(비방서를 냉큼 집어 들어 본다)
똑 같네.

공길
(당황하며)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연산, 가눌 수 없이 혼란스러워한다.

녹수
(의금부 도사에게)
뭣들 하느냐?

의금부 도사, 칼을 빼어 들고 공길의 목을 겨눈다.

연산
(뒤돌아 선채)
니가 왜?

공길, 자신과 필체가 같은 장생이 쓴 줄 알고 장생을 바라본다.
장생을 대신해 죽기로 결심하는 듯 보인다.
김처선, 공길을 보며 공길이 한 일이 아님을 직감한다.
장생은 자신을 바라보는 공길의 처연한 눈빛을 보며 자신이 대신 죽기로 결심한다.

공길
그래요, 제가...

하는 순간!

장생
하하하.

장생의 느닷없는 웃음에 모두 놀란다.

장생
(연산 앞으로 나서며)
내가 썼소.

연산과 김처선, 의금부 도사 모두 놀래 쳐다본다.
녹수,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다.
장생 종이 위에 태연한 척 언문을 적는다. 자세히 보면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장생
(종이에 언문을 써가며)
자 잘 보시오.
저 놈이 언문을 나한테 배웠소.
내 쓰는 걸 보고 따라 쓰고,
보고 따라 쓰고 하더니만 필체가 같아졌지.

장생, 얼마만큼 쓰고 종이를 들어 보인다.
같은 필체다.

녹수, 홍내관을 째려본다.
홍내관, 사태 파악이 안돼 쩔쩔맨다.

공길
(다급하게 연산 앞으로 나서며)
아닙니다.
저 놈이 거짓을 고하는 것입니다.
비방서는 제가 쓴 겁니다.

연산, 공길의 말을 믿기 싫은 듯 장생만을 바라본다.

장생
아니요.
저 소인배가 무슨 배포로 비방서를 썼겠소?
내가 썼소.

연산,  한동안 공길을 바라본다.
연산의 침묵에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고 공길과 장생을 번갈아 본다.

연산
(갑자기 크게 웃으며)
하하하!
날이 밝는 대로 저 놈의 목을 베어 버려라.

의금부 나졸들, 공길이 어찌 해볼 틈도 없이 장생을 끌고 나간다.
녹수와 홍내관 완전히 똥 씹은 표정으로 나간다.
장생, 공길을 살리고 대신 죽는 회한과 만족감이 섞인 눈빛으로 공길을 바라보며 끌려 나간다.
김처선, 장생의 눈빛을 보며 장생이 한 짓이 아님을 직감한다.
공길, 안타까운 눈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연산, 장생을 바라보는 공길의 시선을 보다 표정이 굳어져 나간다.
김처선, 공길을 바라보다 나간다.
공길 홀로 남는다.


 김처선의 집-밤

방 문 앞에 박원종을 포함한 무관들 몇이 칼을 차고 나란히 서있다.
방안에 김처선과 성희안 차를 놓고 마주 앉아 있다.

성희안
날이 정해졌습니다.

김처선
차, 드시지요.

성희안
세분의 왕을 모셨지요?

김처선
차, 드시지요.

성희안
저희와 함께 네 번째 왕을 모십시다.

김처선
저한텐 세분을 모신 것도 과합니다.

성희안
(잠시 생각하다)
그날, 그곳에 계실 겁니까?

김처선
전 모릅니다.
그 날이 언젠지.

성희안
그럼---.
(일어나 찻잔을 내려다보며)
전 차를 마신 적이 없습니다.

성희안, 김처선을 내려 본다.


 궁 연산 처소-밤

연산, 거부하는 공길을 억지로 자신의 자리에 앉힌다.

연산
그래, 거기 앉아.
거기 앉으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공길
장생이를 살려 주세요.

연산, 공길의 말을 아랑곳 않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말을 늘어놓는다.

연산
말해봐. 원하는 게 뭐야?
명령만 내려. 어서!

공길
살려 주세요.

연산
내가, 내가 널 즐겁게 해줄까?
어떻게 해줄까?
(덩실덩실 춤을 추며)
봐, 즐겁지?
아니야?

공길
제발.

연산
(이번엔 되지도 않는 재주를 넘다 넘어진다)
이건?
재밌지?

공길
...

연산, 갑자기 정색을 하며 슬픈 눈으로 공길을 바라본다.
문 밖, 김처선이 공길과 연산의 그림자를 본다.


 궁 옥-아침

장생, 목에 칼을 쓰고 앉아 있다.
김처선 다가온다. 간수들에게 뭐라 말한다.
간수들 옥문을 연다.
김처선 들어선다. 간수들 따라 들어와 칼을 푼다.


 궁 어느 문 앞-아침

장생과 김처선, 말없이 걸어온다.

김처선
가라.
이제 놀이판은 끝났어.

장생, 선뜻 가지 못하고 김처선 너머 궁 안을 본다.

김처선
공길이를 버려.
공길이는 왕의 남자야.

장생
공길인 왕의 남자가 아니예요.

김처선
비방서는 공길이가 쓴 게 아니야.

장생,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한동안 김처선을 바라본다.
문을 빠져나가려다 뒤돌아서더니,

장생
왕이 풀어주는 거 아니지요?
영감께선----?

하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김처선을 바라본다.

김처선
난 너처럼 떠도는 광대가 아니야.
어서 가.

장생, 문을 빠져나간다.


 궁 연산 처소/마당-낮

공길, 연산 옆에 뜬눈으로 누워있다.
새벽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연산의 눈을 비춘다.
연산 눈을 뜬다.
밖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드는 발자국 소리 들린다.
연산 몸을 일으켜 문을 연다.
나졸들이 처소 앞마당으로 모여들고 있다.

연산의 처소 지붕 용마루에서부터 앞 건물 지붕으로 긴 외줄이 나 있다.
그 위에 장생이 올라서 걸어가고 있다.
장생을 비추는 새벽 햇살이 영롱하다.

연산과 공길, 놀란다.
장생 줄 위에서 겅중겅중 걸으며 사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장생
(연산이 보는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허~
세상에서 젤 높은 놈이 사는 궁도,
예서 보니 아무것도 아닐세.

장생을 올려다보던 나졸들, 연산을 바라보며 처분을 기다린다.
연산, 아무 지시도 없이 장생을 두고 본다.

장생
내 살다 살다 별별 잡놈을 다 봤는데,
이 곳에 와서 잡놈 중에 잡놈을 하나 봤지.
내 그놈이 하는 짓을 낱낱이 아뢸테니,
샌님네들 한번 들어 보실라우?

연산, 장생의 공연을 즐기듯 빙긋이 웃는다.
장생 줄밑에선 나졸 등을 구경꾼 삼아 사설을 계속한다.

장생
먼저 그놈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쯤으로 아는데,
그래서 예서 죽어 나간 목숨이 저기 저
기왓장 수보다 많고!

연산
많고!

연산
기생질 하는 걸 볼랍시면,
이천 명이 넘는 기생들과 밤낮없이 방사를 치르는데,
이 놈 물건이 그 크기가
(팔뚝을 내밀며)
이만, 아니...
(팔뚝을 앞으로 쭉 더 내밀어)
이만해서 궁 안이 기생들의 자지러지는 소리로 가득허고!

연산
올커니, 가득허고!

하며 장생의 사설에 흥을 낸다.
공길의 얼굴, 하예진다.
의금부 도사 차마 못 듣겠는지 나졸들에게 손짓을 하려다 연산의 저지로 그만둔다. 

장생
이 놈이 기생들의 요분질이 시시해지니
이번엔 남자하고 붙어먹는 짓도 서슴지 않는데.

연산, “남자하고 붙어먹는 짓”이라는 장생의 사설에 공길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는다.
활을 당겨 장생을 겨눈다.

장생
그 비역질이 보통 비역질과 달라서,
밥이 나오고,
비단옷이 나오고,
벼슬까지 나오는 비역질인데!

연산 활을 쏜다.
장생, 날아오는 활을 슬쩍 피하며 재주를 계속한다.
연산, 다시 활을 겨눈다. 쏜다.
이번에도 장생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간다.
세 번째 화살을 쏜다.
화살 끝이 줄을 때린다.
줄이 흔들리며 장생 떨어진다.
의금부 나졸들 장생에게 달려든다.
장생을 일으켜 세워 연산의 방 문 앞으로 끌고 간다.
연산 방안에 있는 칼을 빼들고 맨발로 문지방을 넘어선다.
연산, 장생 앞에서 칼을 높이 쳐든다.

연산
이 놈이!

하며 칼을 내리치려는 순간!
공길이 달려 나가 연산과 장생 사이로 나선다.

공길
(간곡하게)
마마.
어찌 왕의 손에 천하디 천한 저놈의 피를
묻히려 하십니까?

연산, 공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공길
마마. 저 놈은 타고난 광댑니다.
저 놈에게 목숨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광대면 누구나 신명이 올라 놀다 죽길 바래요.
저 놈을 지금 죽이시면 그건 저 놈에게 형벌이
아니라 은혭니다.

장생
그래, 니가 나를 아는구나.
이제 광대도 뭣도 아닌 놈이 어찌 그걸 알고?
(연산을 향해)
저게 임금이야 망나니야.
천한 놈 하나 죽이는데 뭔 사설이 이리 길어?
쳐라.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이다. 쳐라!

연산 부르르 떨던 손을 내려놓는다.

연산
잃을 게 없어?
내 다시는 니놈이 광대짓을 못하게 해주지.
여봐라!
저 놈의 눈을 불로 지져라!

(jump)

불에 달궈진 시뻘건 인두가 장생의 눈에 다가간다.
장생 눈을 감고 동상처럼 앉아있다.
연산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본다.
공길,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눈으로 장생을 바라보다 끝내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연산 그런 공길을 본다.
장생의 눈이 지져진다.
긴 비명.


 궁 옥-밤

공길 지친 모습으로 옥사에 들어선다.
옥문 간수들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한다.

공길, 눈이 먼 채 형틀을 쓰고 앉아 있는 장생을 본다.
그저 바라본다.
공길, 간수를 본다.
간수 항아리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장생, 물바가지를 받아 마신다.

장생
간수 양반, 지금이 낮이요, 밤이요?
내 광대요.
평생 남의 흉내 내며 산 광대.
이거 누구 흉내 내며 죽어야 하나?

공길, 표정 없는 눈으로 장생을 바라본다.

장생
저기, 재미난 얘기가 있는데 함 들어 볼래요?
내 어려 종살이 할 때 일인데,
누가 겁 없이 안방마님 금붙이를 훔친 적이 있었어요.
주인 양반이 종놈들 죄 모아놓고 호통을 쳤지.
근데 나서는 놈이 없더라구.
엄동설한인데 좀 추웠겠수?
근데, 거 참 이상하지.
꼭 그 금붙이를 내가 훔친 것만 같더라구.
“어르신, 제가 훔쳤어요...”
그 말을 하는데 왜 오줌이 질질 흘러내리는지.
바지춤을 타고 그 뜨뜻한 오줌이...
뜨뜻한 게 어찌 그리도 시원하던지.
지금 꼭 그런 기분이야.
아주 시원해.
(사이)
근데 거 참 희한하네요.
이렇게 안보이니 보일 땐 못 보던 게 보여요.
죽으면 더 많은 게 보일라나?
(사이)
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진짜 맹인이 되서는 맹인 연기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게 정말 한이네.
진짜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데 말이요. 허허허.

공길, 하염없이 장생을 바라본다.


 궁 연산 처소-밤

낮은 병풍.
그 앞에 연산 앉아 있다.
병풍 뒤에서 구슬프지만 아름다운 풀피리 소리 들려온다.
풀피리 소리 멈춰지고,
병풍 위로 손 인형 하나가 올라온다. 장생 인형(a)이다.
장생 인형, 병풍 위에 털썩 걸터앉는다.
공길 인형(b), 병풍 위로 고개를 삐죽 내민다.
공길 인형, 주춤거리며 다가와 장생 인형 옆에 와서 앉는다.
나란히 앉은 두 인형 화면 가득 잡힌다.
 
공길(off-sound)
(b)미안해.
(a)뭐가?
(b)주인마님 금붙이 내가 훔쳤단 말이야.
(a)상관없어. (사이) 그 금붙이 어딨어?
(b)여기.
(a)나랑 도망가지 않을래.
(b)어디로?
(a)어디든!

두 인형 병풍 위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실젠지 환청인지 광대패들의 신명나는 장단 들려온다.

공길(off-sound)
(b)광대다!
(a)가보자!

두 인형, 병풍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춤을 추다 병풍 모서리에서 공길 인형이 외줄을 탄다.

공길(off-sound)
(a)아래를 보지 마.
(b)무서워.
(a)줄 위라고 생각하면 안돼.
줄 위는 반 허공이야.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반 허공.

두 인형, 외줄을 타듯 병풍 모서리를 겅중겅중 걷는다.
갑자기 멈춘다.
두 인형 병풍 아래로 사라진다.
인형이 다시 올라온다.
장생 인형의 눈이 칼로 찢겨져 있다.

공길(off-sound)
(a)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진짜 맹인이 되서는 맹인 연기 한번 못해보고
죽는 게 정말 한이네.
진짜 제대로 한번 놀 수 있는데 말이요. 허허허.

장생 인형, 병풍 아래로 풀썩 내려간다.
연산, 의아해 쳐다본다.
병풍 밑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연산 놀라 달려들어 병풍을 거칠게 제친다.
쓰러져 있는 공길의 손목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jump)

의관들 일어나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간다.
공길, 손목에 붕대를 동여 메고 누워있다.
연산, 공길을 한동안 내려다본다.
연산 일어나 공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공길로부터 멀어진다.
창호 문에 턱 막힌다.
손을 뒤로 돌려 문을 연다.
문을 빠져나가 휘청거리며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궁 옥화당-밤

연산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녹수 의외다. 경계의 눈빛으로 연산을 바라본다.

녹수
뭐야? 무슨 일이야?

연산 아이 같은 천진한 표정으로 녹수를 바라보다 녹수의 치마 자락을 치켜들며 파고든다.

녹수
뭐야? 저리 비켜!

연산 막무가내다.
녹수 이내 자지러지게 웃으며 쓰러진다.
녹수의 웃음 방안에 퍼진다.
연산, 갑자기 치마 밖으로 불쑥 고개를 내민다.

연산
연회를 열어 놀자.

녹수
광대들 모두 떠났어.

연산
공길이하고 장생이가 있잖아.
(문 밖을 향해)
처선아.

아무 대답이 없다.

연산
처선아, 처선아!

연산, 김처선을 부르고 또 부른다.
끝내 아무 대답 들려오지 않는다.


 궁 후원 연못-밤

연못 가득 연꽃잎이 덮여 있다.
개구리 울음 소리가 처연하다.
연못 가운데 누군가의 시체 떠있다.
김처선이다.


 궁 후원 연회장-낮

칼을 든 의금부 나졸들 도열해 있다.
궁 후원 하늘 위를 가로질러 외줄이 높게 설치되어 있다.
연산과 녹수 앞에 장생이 말뚝이탈을 쓰고 앉아있다.
그 옆에 공길이 서있다.

어디선가 장단소리 들려온다.

연산
시작하라.

공길, 장생 옆에 늘어져 있는(외줄로부터 이어져 있는) 줄을 잡아 그 끝을 장생의 손에 쥐어준다.
장생, 공길이 전해 주는 줄인 줄은 모른 채 줄을 잡고 일어난다.
장생 줄을 잡고 외줄을 향해 걷는다.
장생, 경사진 줄을 올라 외줄 위 끝에 선다.

장생
어허~ 내, 눈이 멀어 줄 위에 올라서니,
이 색다른 맛일세!

장생, 줄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금방 떨어질 듯 휘청거린다.
공길, 불안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장생을 본다.

장생
(아슬아슬하게 줄 위를 걸어 나가며)
내, 실은 눈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번 들어들 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패를 첨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짓 할 때는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 게
어찌나 신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울컥 하는 걸 겨우 참으며)
한양에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엽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 가는 걸
못 보고. 그 마음이 멀어져 가는 걸 못 보고.
(사이)
이렇게 눈이 멀고 나니 훤하게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도 그걸 못보고.

장생, 말을 멈추며 걷는 것도 함께 멈춘다. 위태롭게 흔들린다.
공길, 자기도 줄에 오르고 싶어 연산을 돌아본다.
연산, 막지 않는다.
공길도 각시탈을 쓰고 걸어가 줄 위로 오른다.

장생
(억지 신명을 내며)
그건 그렇고!
이렇게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이 맛을 알았으면 진작에 맹인이 될 걸.

공길, 줄 위에 올라서 장생을 바라보고 있다가

공길
(울먹임을 참으며)
이 잡놈아, 맹인이 되니 그리 좋으냐?

장생, 공길의 목소리에 놀라 휘청한다.
공길, 흔들리는 장생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장생, 금방 다시 균형을 잡고 공길의 목소리를 찾아 예민하게 집중한다.

장생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이년아!

공길
(장생을 한동안 바라보다)
저...
(울먹임을 참으며)
저 겁대가리... 없는 놈 좀 보소.
눈깔도 없는 놈이 게가 어디라고 거길 올라가 섰냐.
냉큼 내려가라, 이놈아.

장생, 환희에 찬다.

장생
(신명이 나기 시작해서)
저 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이년아!

공길
(울먹임을 참으며)
그래?
안 그래도 내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든 왕의
상판때기 한번 보고 싶었는데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이놈아!

[인서트]
궁으로 향하는 어느 길을 달리는 반정군들.

장생
(탈을 벗어 아래로 던져 버리며)
저 년이! 내 상판이 어디가 어떤데?

공길
(공길도 탈을 벗어 허공으로 던져버리며)
네 놈이 두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 놨구나.

장생
옛끼, 이년!
자, 이승의 왕인 내가 한번 놀아볼 것인데,
이 모습을 한번 보면 저승에 가서도
못 잊으니 잘 봐라. 이년아.

장생 첫걸음을 떼는데 발을 헛딛고 휘청한다.
공길 깜짝 놀란다.
장생 다시 균형을 잡고 줄 위를 걷는다.
공길도 걸어 나간다.

[인서트]
궁궐 입구에서 근위병을 물리치고 궁궐 문을 통과하는 반정군들.

장생 성큼성큼 줄 위를 걷다 중간에서 허궁제비(줄을 튕겨 다리사이로 앉았다 오르기)를 한다.
공길, 장생을 똑같이 따라한다.
장생과 공길의 외줄타기가 한 줄 위에서 통일감 있게 펼쳐진다.
공길과 장생, 어느새 현실을 잊고 줄타기 신명에 완전히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반정군들이 몰려오는 소리 들려온다.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 술렁인다.
연산, 공길과 장생에게 집중하고 있다.

[인서트]
궁궐 안 어느 다리, 다리를 건너오는 근위병들을 물리치고 다리를 건너는 반정군들.

장생, 반동을 멈추고 줄 위에 바로 선다.
공길도 선다.

장생
넌 죽어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프냐?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공길
아니, 싫다!

장생
그럼 왕으로 태어나면 좋으련?

공길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태어날란다.

장생
이 년, 그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공길
그래 이놈아. 그러는 네 놈은 뭐가 되련?

장생
나야, 두말할 것 없이.
광대, 광대지!

사람들, 연회장에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인서트]
연회장으로 닿는 산자락을 넘어 연회장으로 밀려 내려오는 반정군들. 이를 보는 연산.

공길
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광대로 다시 만나 제대로 한번 맞춰보자!

장생
(허리춤을 풀며)
지금 한번 맞춰보면 안될까?

연산, 웃음을 터뜨린다.
연회장의 사람들 모두 도망가고 연산과 녹수만 남는다.
녹수, 겁먹은 표정으로 반정군들과 웃는 연산을 번갈아 본다.
홍내관 다급하게 달려와 녹수를 끌어낸다.
녹수, 연산에게 미련이 남는 듯 주저하다 도망간다.
도망가다 반정군의 칼에 맞아 죽는다.
 
공길과 장생, 줄을 힘껏 튕기더니 높이 몸을 띄운다.
시간이 멈춘 듯 화면 정지한다.


 어느 들길-낮

어디선가 장단 소리 들린다.

엔드 크레딧 오른다.

지평선 위로 공길과 장생, 나타난다.
칠득과 팔복, 꽹과리와 북을 치며 나타난다.
둘만의 맹인 소극(笑劇)을 한다.
공길과 장생 마주 오다 부딪친다.

공길
아야! 아 이놈아, 눈 달아 뒀다 뭐해?

장생
아 이놈아, 눈 달아 뒀다 뭐해?

공길
눈이 삐었냐?

장생
눈은 안 삐고 산 넘다가 다리를 삐끗했지.
근데 이 소리가 강 건너, 강봉사?

공길
이 냄시 들 질러, 봉봉사?

장생
아이고, 이거 반갑구만.

공길과 장생 만나려고 하는데 자꾸 엇갈린다.

장생
이봐,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또 엇갈린다.

공길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또 엇갈린다.

장생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공길
아, 너 거기 없고 나 여기 있지.

엇갈리다 만난다.

장생
이거 정말 반갑구만.
헌데 강봉사, 강은 어찌 건넜나?

공길
고생 많았네.
어찌어찌 깊던지 거꾸로 서면 눈썹이고 바로서면
발목에 차서 물에 빠져 죽는 줄 알았네.

장생
고생 많았네.

공길
아 그래 어디 가나?

장생
오네, 개판 똥판 갔다 오네.

공길
개판, 똥판? 어찌 왔나?

장생
날아 왔네. 하도 잘 먹어서 방구 뀌며 날아왔네.

공길
예끼, 자네 뽕봉사가 아니라 뻥봉사구만.

장생
그럼 이 봉사 방구의 내력을 한번 들어보겠나?
내 한양땅 개판 똥판 들어서네.
이놈의 봉사 개판 똥판 들어가니,
저기 오는 저놈의 봉사 돈 한 푼 없는 녀석이
눈에는 은장식 박았다,
저기 오는 저놈의 봉사 쌀 한 줌 없는 놈이
눈에다 흰죽 써 발랐다.
저기 오는 저 놈의 봉사 멀뚱멀뚱 잘도 멀었다.
아, 근데 용포 입은 개 하나가 내 똥구에 코를
처박고 킁킁하지 않겠나.
그래 내가 십년 삭은 무 방구 고구마 방구를 뽀~옹
뿌~웅 날리네.
옛다, 니미뽕이다~아...

공길과 장생의 맹인 소극, 지는 노을을 뒤로하고 끝없이 계속된다.

-끝-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